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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성생활 -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
까뜨린 M의 성생활, 이 책의 표지는 빨갛다(개정판 표지는 달라졌다). 빨간 책이다. 도색잡지를 일컬을 때 '빨간 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책은 그것을 의도한 양 빨간 표지를 쓰고 있다. 원서의 표지는 여인의 누드로 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그런 표지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테고, 책의 성격은 드러내야 하겠고 해서 이런 표지를 취한 게 아닌가 싶다.
제목과 표지에서 보이듯이 이 책은 '야한 책'이다. 잡다한 책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성수가 그 간의 독서경험에 비추어서 자신있게 말하건대 출판물 중에서 표현의 강도와 내용의 적나라함 만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하다. 표지에 보면 '19세 미만 구독불가' 라고 되어있는데 그럴만하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나 부끄러움, 민망함 등을 느낄 것이다. 물론 출판물로서의 한계가 있으니 비출판물 - 흔히 말하는 야설 - 보다 약할 수밖에 없지만 출판물로서는 한계의 끝까지 내달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도색소설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지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카트린 M이라는 프랑스 여자가 자신의 성경험을 쓴 책이다.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이게 중요하다. 솔직하게. 책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일찍이 어떤 여자도 자기의 성생활을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한 여자가 자기의 쾌락이 형성되고 펼쳐지는 현장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등으로 그 솔직함과 적나람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니 얼마나 성생활을 많이 했기에 책으로 쓸 정도냐고? 많이도 했다. 일대일 관계는 별로 없고, 대부분 다대 일의 관계다. 보고 있음 정말 이 여자, '생활'하느라 힘들었겠다.
다대 일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성생활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변태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 안 들었다. 들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적어도 이 책은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다. 6개월 간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점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고 - 물론 호기심에서 사본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만- 각 언론과 진보적 지식인 층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 솔직함 때문에 여성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성적 진보주의라는 면에서 크게 평가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섹스에 있어 여성도 주체가 될 수 있고 능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페미니즘과 여성해방 그리고 남녀 평등 등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성에 있어서 전통적인 남성 우월주의는 여성은 섹스에 있어 수동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전통적 남성 우월주의를 깨버린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평가는 나름 일리있는 것이며,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맘에 안 드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우리 언론과 우리 사회의 반응이다. 서갑숙씨의 '나도 가끔은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라는 책이 외설논란에 휘말리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 책 때문에 저자 서갑숙씨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됐다. 출연하던 드라마에서 쫓겨나고 거의 '미친 년' 취급을 받았다. 어디 여자가 자기의 성경험을 밖에서 떠들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책의 각 부분을 문제삼는 기사가 언론에 실리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두 책을 모두 읽어봤다. '카트린 M'에 비하면 '포르노그라피'는 애들 동화다. 표현의 강도와 양 자가 경험한 섹스의 형태 등 어느 것을 봐도 카트린 M이 더 심하다. 포르노그라피 에서 문제됐던 2 대 1 섹스나 36시간 섹스라는 것 사실 별 거 아니었다.
카트린 M에는 한 페이지에만도 파트너가 몇 명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아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많이도 한다.
그런데 카트린 M에 대해서는 우리 언론에서도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체로 외국 언론의 코멘트와 비슷하게 솔직한 미덕을 보이는 책이라고 한다. 우리 정서와 좀 안 맞는다는 얘기도 있지만 대체로 봐서 나쁠 것은 없다 정도의 반응이다.
이처럼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은 왜일까?
일단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대주의를 들 수 있다. 한마디로 외국 사람이 한 것은 일단 뭔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국에서 칭찬했으니 차마 뭐라 말 못하는 것이다. 객관적 잣대로 본다면 카트린 M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쳐야한다. 그럼에도 알아서 기는거다. 갱뱅을 벌여 주목을 받은 중국계 미국인 에나벨 청에 대한 우리 언론의 태도도 역시 그러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도 나오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난리였다. 일종의 페미니스트 전사로 취급했다. 우리나라 여성이 일부러 300명이 넘는 남자와 잇달아 성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해봐라. 나라 뒤집어졌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자리잡고 있다. 서갑숙씨가 여자였기 때문에 더 난리친 것이다. '어디 여자가 감히' '여자는 자고로 조신해야지' 이런거다. 이런 태도는 'O양 사건'에 있어서 'O양'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을 하면서 상대인 'H'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같이 했는데 여자만 매장당했다.
참고로 H의 비슷한 수기집도 출판됐는데 이 책 역시 표현강도는 '포르노그라피'보다 더 심함에도 별로 문제되지 않았었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 대해서 더 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몰아붙인다. 성적 엄숙주의도 인정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엄숙주의는 사회폭력의 하나일 뿐이다.
카트린 M을 읽으면서 든 씁쓸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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