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올해의 책 best 11
매년 하는 올해의 책 선정의 시간이 돌아왔군요. 올해는 117권을 읽었습니다. 권수는 매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게 제 몸무게와 비슷합니다. 다이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술 한 잔 마시면 돌아오는 몸무게처럼, 책도 며칠 열심히 읽다가 미드라도 하나 잡으면 제자리걸음이 되어버리네요.
올해 만난 책 중 좋은 책 11권을 가져왔습니다. 베스트셀러도 있고 숨은 책도 있고. 무순입니다.
기생충 열전, 서민, 을유문화사
서민 교수는 기생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자 기생충을 인간들에게 소개하는 중매쟁이입니다. 솔직히 환영은 못 받는데, 재미는 줍니다. 환영하고 싶지 않지만 재밌으니 자꾸 만나게 됩니다. 우리 몸 속에 살고 있지만 잘 모르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책입니다.
외식의 품격, 이용재, 오브제
좀 품격있는 이야기를 해보죠. 외식의 품격이라는 책입니다. 부제가 '빵에서 칵테일까지 당신이 알아야 할 외식의 모든 것'이랍니다. 밥먹을 때 아는 척 하기 좋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뭐 좀 재수는 없을 수도 있는데, 원래 품격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음식에 대한 책을 컬렉션으로 만드는 중이라 관련 책들이 나오면 일단 읽어보는 편인데요. 이 책은 제목처럼 품격이 있습니다. 교양용으로도 좋죠.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데이비브 웨버, 폴라북스
아너 해링턴 시리즈의 시작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명작 중 국내에 소개된 게 많지는 않은데요. 보르코시건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아너 해링턴 시리즈도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처음 집었을 때와 같은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후편이 언제 나올지 기다리게 하는 마력이 있네요. 왕립해군 소속 아너 해링턴 함장의 활약을 그린 작품입니다. 용감하고 지략에도 뛰어난, 사람도 잘 다루는 주인공입니다. 처음에 설정이 좀 복잡한가 싶지만, 이내 빠져들고 만드는 소설입니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작년 여러 매체에서 뽑은 올해의 책이었습니다. 수필인데, 게다가 대중적으로는 무명인 작가의 책이 올해의 책으로? 매체마다 칭찬이 가득했지요. 문장의 아름다움부터 글의 깊이까지. 궁금해서 읽었습니다. 과연, 이 책은.
다윗과 골리앗, 말콤 글래드웰, 21세기북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경영 쪽 작가입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잘 나갑니다. 그는 글을 매우 잘 씁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매우 재밌게 그리고 납득가능하게 보여주기를 잘합니다. 티핑포인트도 그랬고, 아웃라이어도 그랬죠.
이 책은 많은 조건이 열등한 자(다윗)이 어떻게 조건이 좋은 자(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서 보여줍니다. 모든 경우에 다윗이 이긴다는 건 아닙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다윗의 가능성을 보여주는거죠.
제7일, 위화, 푸른숲
위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중국 현대 작가입니다. 제일 유명한 건 허삼관매혈기겠죠. 저는 그의 소설 형제, 그의 수필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좋아하는데요. 제7일은 소설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 7일동안 과거와 현재를 돌아다니며 삶을 재구성하는 내용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중국 현실에 대한 뼈아픈 비판을 품고 있고, 한편으로 해학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재밌는 외국 소설을 들여오는데 열린책들만한 출판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초기 히트작 개미도 그렇고, 쥐스킨트 시리즈도 그렇고, 어디선가 듣도 보도 못한 외국 작가의 소설을 가져오는데, 와, 이게 뜻밖에 되게 재밌단 말이죠. 수백권의 책 중에서 몇 권 히트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만큼 내면서 다 망하는 출판사도 있거든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뽑아볼만한 복권입니다, 열린책들의 외국소설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저 책을 보고, 에이 제목 특이해서 마케팅 잘 뽑은 소설이겠지 라고 안보다가, 선물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면에서는 투썸업 드리겠습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바우돌리노를 연상시키는 입담과 구라가 일품입니다.
네메시스, 요 네스뵈, 비채
북유럽 스릴러의 선두 요 네스뵈의 스릴러 소설입니다. 춥고 건조한 북유럽 날씨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죠. 얽히고 설킨 스토리를 반전에 반전에 반전으로 풀어버리는 속도감 좋은 소설이네요. 두껍지만 예비군 훈련 가서 첫날에 다 읽어버리게 하더군요.
빌리 밀리건, 대니얼 키스, 황금부엉이
이제는 익숙해진 용어 다중인격자. 이 개념이 제대로 인정된 것은 불과 3-40년 전인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입니다. 최초로 다중인격자로 인정받은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입니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합니다. 성폭행 등 혐의로 잡혀온 범인, 그런데 그는 여러 가지 표정과 모습을 보여주는데.....
24중 인격자로 판명된 빌리 밀리건. 그의 수감, 치료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그의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다중인격이 어떤건지 이 책을 보면서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0살 전까지 기본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호소카와 마키코, 글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부모를 위한 책입니다. 저자는 어떤 선행학습보다는 아이를 기본에 충실하게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6살이 된 큰 애가 있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입니다. 온갖 선행학습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뚝심을 발휘하게 도와줄 책입니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 존 스칼지, 폴라북스
노인의 전쟁을 처음 보고 감탄했습니다. 간만에 보는 짜릿한 sf다 라고 하면서. 그 뒤로 존 스칼지 책은 나오는대로 읽었고, 출판안된 것은 원서로도 봤습니다만.... 노인의 전쟁만틈 경탄하게 하는 소설은 잘 없더군요. 이제 나왔습니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 빠져들게 하네요. 새로 발견된 행성, 거기서 발굴 조사를 하는 주인공, 행성의 포유류.... 가 나오는 법정드라마입니다. 응?
sf에서 뭔 법정? 요리사가 너무 많다 같이 범죄가 발생하는 sf인가요? 범죄는 있습니다. 범인도 찾고요...근데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여기의 사건과 그 풀이는 사실 하나의 장치일 뿐입니다. 소설을 끌어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대를 선택한거죠.
재밌는 소설이지만, 사실 주제의식은 무겁습니다. 새로운 땅 발견했으니가 내꺼! 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생명과 지적능력이란 무엇인가 등등...
존 스칼지를 좋아한다면, 특히 그의 유머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