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들

간판, 학벌

samworld 2015. 11. 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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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대 법대에 들어와서 좋은 점 두 가지.

 

 1.학벌주의의 허상을 확실히 깨달게 되었다.

 

 2.서울대를 맘놓고 까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집단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니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까댐을 먼저 감수해야 하는 집단이 몇 개 있다. 군대와 서울대가 대표적이다. 군대에 대한 비판적 얘기를 하려면(제대군인가산점 제도에 관한 얘기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이야기) 니가 군대는 갔다 오고 하는 이야기냐는 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때 군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고서 글 밑에 '본인은 xx 부대를 만기 전역하였음'같은 사족을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해안선'을 만들었을 때도 군대가 빚어낸 한 병사의 광기를 다룬 이 영화에 대해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니가 군대를 아냐' '장병들의 사기 저하'운운하는 비난이 꽤 있었다. 다행이 김기덕 감독이 해병대 출신이라서 그런 비난을 가볍게 제낄 수 있었다.

 

 어쨌든 학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가 못 갔으니까 콤플렉스 때문에 저런 거다는 비난이 종종 쏟아진다. 군대에 안 갔다와서 군대 비판은 맘 놓고 못하지만 서울대 까대기, 학벌주의의 폐단에 대해서는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 법대 입학의 아이러니한 장점이다.

 

 

#2

 

 사람들이 왜 학벌에 연연하는 것인가, 학벌이 왜 먹히는 것인가, 간판이 왜 통하는 것인가 곰곰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진짜를 알아볼 눈이 없어서'였다. 어떤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고 하자. 그 사람의 진료실력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어느 의대를 나왔는가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병이 잘 낫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하지만 진료실력은 확실히 알 수 없고, 결국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판단요소인 '출신 대학' '박사 학위 유뮤' '전 근무병원'같은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독이 있는 벌레를 먹었다가 고생한 동물은 다시 그런 벌레를 먹지 않는다. 이걸 이용해서 독이 있는 것처럼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벌레가 있다. 실제로 이 벌레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면 독이 있어보여도 먹을텐데 그게 안되니까 독이 있는 것 같으면 안 먹고보는거다.

 

 

#3

 

 이렇게 보면 학벌주의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에 따르면 이상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관습이나 제도도 그렇게 형성되기까지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 배경이 있다고 한다. 학벌주의도 그런 것 같다.

 

 

#4

 

 요즘 나는 새로운 간판을 하나 더 달기 위해서 노력중이다. 변호사 자격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걸 가지게 되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서울대 법대 타이틀에 변호사 자격증, 이 두 가지를 가지면 내 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꿈이 뭔지는 언젠가 밝힐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벌주의를 이용하겠다는 발상이다. 뭐, 어떤 도구든 양면성이 있고, 그걸 어떻게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평소의 소신에 따른 생각이다.

 

 상대적 정의의 추구, 현실적 이상의 실현, 이것이 내 인생 모토이다. '회색주의'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뽑아내는 것이 내 삶의 방침이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그걸 잘 이용하는 것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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