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들

청소(2003.6.29)

samworld 2015. 11. 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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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29



어제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원래는 전혀 그럴 계획이 아니었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 청소할 일이 뭐 있나? 그러나 돌발상황의 발생으로 청소에 돌입하게 되었다. 예정시간까지는 30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비상이 걸렸다.

쓸고, 닦고, 책 싹 정리하고, 물건 안 보이는데로 치우고 등등... 두 사람의 노력으로 방은 어느덧 깨끗해졌다. 아...이 감격이라니. 내 방이 이렇게 깨끗한 적이 있었던가? 청소한 것을 본 친구가 '자기가 본 중에서 가장 깨끗한 상태'라고 했다. 며칠이나 갈 지 모르겠지만(이제 하루 지났는데 오늘만 해도 심각하다)

위의 얘기에서 짐작했겠지만 내 방은 지저분한 편이다. 먼지도 잔뜩 쌓여있고, 옷도 여기저기 널려있다. 정리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책이 도처에 있다. 화장실에도 대여섯 권, 방바닥에도 또 그만큼, 선반에도 있고, 상 위에도 있고. 눈에 띄는 온갖 군데에 책이 있다.

방이 지저분하다고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다. 위생관념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실제로 더러운 것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산다. 설거지도 대충 하는 편이다. 스스로 하기는 하는데 대충 하니 나중에 부인이 싫어할 것 같다. 아님 집중적으로 설거지 교육을 받든지.

방이 지저분한 것에 대해 무신경해진 것은 왜일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큰 것 같다.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사람이라면 알거다. 절대 집안이 완벽하게 깨끗할 수 없다. 파출부를 따로 두면 모를까 두 분이서 일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할 경우 완벽정리는 꿈꿀 수 없다. 우리집 파출부 쓸 돈 없다. 고로 항상 어지러져 있는 편이었다. 손님 온다고 해야 한 번씩 치울까 말까하니 적당히 흐트러져 있는 게 익숙하다.

청결과 시간의 부족의 갈림길에서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치우든지 포기하든지. 청소, 시키기는 쉽지만 하기는 어렵고 별로 티도 안난다. 그리고 매일매일 해야한다. 맞벌이하는 부부의 경우 둘 다 바깥일로 힘들어 지치는데 집안일까지 할 정신없다. 나눠서 하면 되지 왜 못하냐고? 비교적 가사분담의 균등화에 가까운 편인 우리집을 놓고 볼 때 나눠서 해도 한계가 있다. 사람을 쓰지 않는 한 직장일과 가사일의 양립은 쉽지 않다.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완벽한 정리를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커온지라 변명같지만 적당한 너저분함이 편하고 좋다. 그렇게 살면 누가 너랑 결혼하려 하겠느냐고? 더러워서 살겠냐고? 글세.. 맞벌이하는 부부라면 나같은 남편 스타일이 낫지 않을까? 물론 먼저 나서서 청소도 해주고, 집안일도 자기가 더 많이 하는 그런 남편이 최선일거다. 하지만 그런 남자는 찾기 힘들고, 찾았다해도 이미 다른 여자가 채갔을거다. 집안일도 적당히 하면서 집안일 다 못했어도 별로 신경안쓰는 성수같은 스타일이면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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