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연구

과거는 묻지 않는다

samworld 2015. 11. 11. 11:21
728x90

#1

 

 고등학교 수학시간의 일이다. 수학선생님 중 1인은 좋게 말해 특이하고 나쁘게 말해 변태같은 교사였다. 수학시간에 칠판에 문제를 적고 학생들로 하여금 풀게 하였다. 그 뒤 학생을 교단에 세워놓고 질문을 던졌다.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지금 식으로 생각하면 면접 대비라고도 우겨볼 수도 있겠으나 수학 시간에 왜 그걸 해야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하루는 내가 걸렸다. 그 날의 주제는 '혼전동거'였다. 주제 예사롭지 않다.

 

 첫 질문은 간단했다. 혼전 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답. 남들이 하는 건 상관없다, 나는 안하겠다.

 

 다음 질문. 그럼 네가 결혼했는데 네 부인이 혼전동거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답. 과거는 묻지 않는다.

 

 그 뒤 변태적인 질문이 몇 개 더 이어졌지만 본 글과 상관없으므로 넘어가자.

 

 

#2

 

 내가 상대방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서로 과거를 문제삼으면 내가 더 손해라는 것이다. 내 과거가 대략 10배쯤은 화려하고 복잡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묻어두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같은 이유로 '서로의 과거를 다 털어놓고, 오늘 이후로 문제삼지 말자' 같은 제안에도 절대 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다른 하나는 좋은 과거든 나쁜 과거든 그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알면 기분나쁠 수 있다. 그렇지만 기분 나쁘다고 과거만 도려내고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갖겠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게 무슨 벌레 먹은 사과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당신 그대로이지, 과거를 제외한 당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 옷 중 50%는 선물받은 것이고 30%는 골라준 사람이 있고, 20%는 추억이 있는 옷이다. 다른 여자와 관련된 옷이기 때문에 기분나쁘다, 입지 마라 라고 하면 나는 발가벗고 다녀야 한다. 겨울에 받은 옷이 많아서 겨울에 특히 그렇다. 물론 나에게는 남들이 부러워마지 않는 고탄력 매력배가 있으므로 벗고 다녀도 되지 않겠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수 남자들의 연애전선 형성을 위해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매력배가 추위를 완벽히(어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막아줄 수도 없다. 고로 벗고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과거를 문제삼는 것은 옷을 벗고 다니라는 것과 같다. 과거에 어떤 경로로 입수한 옷이든 일단 내가 입은 이상 그건 내 옷 중 하나일 뿐이다. 분리할 수 없다. 나를 받아들일거라면 내 옷 전부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은 동일체로서의 사람, 통일체로서의 사람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걸 거부하고 일부만 받아들이려다가는 상대를 잃을 수 있다. 속앓이만 하게 된다. 과거있는 옷이 싫다고 벗겨내려 해봐야 상대가 감기 걸릴 뿐이다. 과거는 묻지 말자. 건강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