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연작 2] 바람을 잘 피는 방법
#0
모든 커플들이 이 바람 잘 피는 방법을 잘 숙지하여 바람을 피게 되기를,
그래서 커플 관계가 지저분하게 끝나게 되기를,
절실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1
동양 사상을 이루는 몇 가지 축이 있다. 음양론, 오행론, 그리고 삼재론이 그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음양론은 남과 녀, 빛과 어둠처럼 서로 상반되는 양과 음의 조화에 의해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오행론은 화, 수, 목, 금, 토 5가지 기운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삼재론은 천, 지, 인의 세 가지 요소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재론 혹은 삼재사상은 삼국지에도 나온다. 삼고초려 끝에 공명을 만나게 된 유비에게 공명은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하며 이런 말을 한다.
조조는 북방을 차지해 천시를 가지고 있고, 손권은 강동을 차지해 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유비님께서는 형주와 익주를 차지해 인화를 얻어야 합니다.
(기억으로만 쓴 거라 정확치 않음)
여기서 말하는 천시, 지리, 인화가 바로 삼재론이다. 천하를 얻으려면 천,지,인 세 가지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바람피는 데 무슨 삼재사상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허나 바람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연애관계 혹은 결혼관계를 유지한 채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 아닌가. 관계란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 그렇게 볼 때 동시에 두 개의 관계, 두 개의 세상을 경영하려면 천,지,인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바람을 잘 피려면 천,지,인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3 천天
천이란 곧 시간을 말한다. 바람을 필 때 시간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거시적으로는 파트너 부재를 말하며 미시적으로는 바람을 안 걸리기 위한 알리바이를 말한다.
파트너 부재란 애인이 지방에 떨어져 있다든가 남편이 출장갔다든가 하는 것을 말한다. 매일같이 붙어다니는 연애관계에서 무슨 바람이 불겠는가 말이다. 떨어져 있어야 기회가 온다.
미시적으로 바람 피기 좋은 때란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는 때이다. 6-70년대 카바레에서 바람나는 주부들이 사회문제되었을 때 카바레에서 주부들의 장을 대신 봐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장보러 간다고 나와서 춤바람난 후 카바레에서 준비한 찬거리를 가지고 집에 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휼륭한 고객만족 경영인지... 이처럼 알리바이를 확실히 확보할 수 있는 경우에 바람은 성립 가능하다.
#4 지地
지란 곧 장소를 말한다. 바람을 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 걸리는 것. 그렇다면 맨날 가는 장소, 자기네 집 근처에서 바람을 펴서는 안된다. 당연히 평소 잘 안 가던 곳, 무엇보다다 파트너가 출몰할 일이 없는 장소가 좋다.
하지만 낯선 곳이라서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사람의 눈은 어디에나 있는 법. 혹시나 다른 제3자가 바람피는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런고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바람상대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안 보이는 곳, 예를 들어 모텔방이나 비디오방 같은 곳에서 애정행각을 벌이시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그냥 아는 사람인 척 다니는 게 좋다.
그런 면에서 보리밭과 물레방아간이 사라진 현대에서는 바람피는 장소로 '차'가 큰 의미를 차지한다 할 것이다. 기동성도 좋고, 둘만의 공간을 확보하기도 좋고.
#5 인人
인은 사람이다. 천,지,인 중에서 인이 가장 중요하다. 천과 지가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인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바람을 필 수 없다.
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파트너, 다른 하나는 바람상대자.
먼저 파트너는 지금 현재의 연애관계 혹은 결혼관계의 상대방을 말한다. 이 사람의 바람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데, 적극적으로 '우리 각자 사생활은 존중해주자'라는 쪽이면 아주 좋다. 그렇지 않고 바람은 무슨 바람이냐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바람을 펴도 알아채지 못할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뺑덕어멈이 바람난 줄도 모르는 심봉사가 참 좋은 파트너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상대자이다. 어떤 바람상대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람의 성패와 바람의 쾌락이 달라진다.
바람상대자는 무엇보다도 뒤끝이 없어야 한다. 질척질척하게 달라붙는 사람은 바람상대자로 적당하지 못하다. 이런 사람은 이제 원래의 연애관계 혹은 결혼관계로 돌아가려 할 때 징징 대며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달라붙을 수 있다. 그것 참 난감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앤조이에요' 라는 쿨한 자세를 견지하는 자가 적합하다 할 것이다.
또한 바람상대자는 비밀유지 기능이 탁월해야 한다. 뭐, 바람의 묘미는 들킬 듯 말 듯한 스릴감에 있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비밀유지 기능이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바람을 펴면서도 안정된 원래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 비밀유지 기능을 갖춘 바람상대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