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들

첫 휴가 (2008.8.17)

samworld 2015. 11. 1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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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휴가를 나왔다. 이제 4시간 뒤에는 부대로 들어가야 한다. 2박 3일간의 일정이라 양가를 한 번씩 오고가니 다른 시간은 낼 수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 연락하고 싶은 사람 많지만 임관 이후로 미룬다.

 

 첫 휴가 나오면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데 군대에 완전히 적응한 것인지 나는 별다른 욕구가 없었다. 아내와 함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군대에서 먹기 힘든 음식들을 좀 먹은 것 이외에는.

 

 군대에서 먹기 힘든 음식으로는 튀김류, 면류 같은 게 있다. 과일도 먹기 힘들다. 그리고 계란 후라이. 비빔밥이 나와도 찐 계란이 나오는 곳이 군대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는 계란 후라이를 2개 먹어줬다. 과일은 틈나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

 

 그 외에는 군대밥에 별로 불만없다.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살 뺀다고 식사 조절도 해가면서. 설사를 해서 잘 안 먹는 우유가 아침마다 하나씩 나오는데 군대에 오니 설사병도 없어졌는지 괜찮길래 열심히 잘 먹어주고 있다. 원래 가리는 음식도 없는 성수이니, 조미료 덩어리 짬밥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살은 빠졌다. -10kg. 이것이 입대 7주만에 받아든 성적표다. 증거사진을 몇 장 올리겠지만 아주 기름기가 쏙 빠졌다. 결혼식 때 실패했던 '후회하게 만들겠어 프로젝트 1탄'에 이은 '후회하게 만들겠어 프로젝트 2탄'이 시작되고 있다. 완전히 달라진 얼굴과 몸매에 아내가 순간 나를 몰라봤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내가 봐도 완전히 달라졌다.

 

 첫 휴가로 w hotel에서 호텔팩으로 1박 2일을 보냈다. 이렇게 쓰고보니 엄청난 상류층 자식이 첫 휴가 나온 것 같다. 우린 신혼여행 때 가지 않은 특급호텔 1박을 이번 기회에 했을 뿐이다. 결혼식 후에 특급호텔 가봤자 잠만 자고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 제대로 하루종일 호텔에서 지내보았다.

 

 w hotel은 명성만큼이나 모던한 특급호텔이었다. 어른들은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젊은 취향에는 맞았다. 아내가 장염에 걸려서 와인을 까며 분위기 잡는 일은 못해봤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운 호텔팩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했는데, 내가 자유형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w hotel은 한강변에 있어서 한강을 보며 수영할 수 있었다는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우리 방은 아차산을 면해있었는데, 산과 강 모두를 즐길 수 있었다.

 

 저녁은 호텔 식당인 kitchen에서 먹었는데, 이 곳의 양고기 스테이크는 내가 먹어본 양고기 중 최고의 맛이었다. 소스가 좀 진한 감이 있었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역시 밖으로는 한강이 보였다. 밤에는 woo bar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사람이 많았고, 남은 자리는 set menu를 시켜야 하느 창가 자리뿐이었다. 세트 메뉴는 수십만원씩 했다. 그러나 우린 호텔 투숙객이어서 칵테일만 마시고도 좋은 자리에 앉을 누울 수 있었다. woo bar는 듣던 대로 나른한 곳이었다. 호텔 바에서의 작업방법에 대해 아내와 토론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조식 부페를 먹으러 갔는데 역시 5성급 호텔이라 그런지 잘 나왔다. 스페인의 최고급 parador인 그라나다 파라도르보다 나았다. 거긴 좀 더 소규모의 아늑한 느낌이었지. 그리고 풀장을 한 번 더 이용하고 퇴실했다.

 

 쓰고보니 첫 휴가 이야기가 아니라, 무슨 여행 후기 같다. 삶은 여행이고, 삶은 즐기라고 주어진 선물이다. 군대에서도 난 그 곳을 충분히 즐겼고, 휴가 나와서는 휴가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제 곧 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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