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들

거리감각 (2011.1.13)

samworld 2015. 11. 11. 13:49
728x90

뛰어난 검객이 되려면 뭘 잘해야 할까? 물론 검을 잘 써야 할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힘차게 검을 휘두를 줄 알아야 검객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검술을 혼자만 펼치나. 검술은 상대가 있고, 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술이다. 검무나 검술 시범이 아닌 다음에야 검술은 상대를 상정하고 펼쳐져야 한다. 그렇다면 뛰어난 검객이란 검으로 상대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검술의 상대성을 전제한다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는 것이다. 상대가 들어오려고 하는지 피하려고 하는지, 싸울 생각이 있는지 위협만 하는건지, 왼쪽으로 올건지 빠르게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올건지.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나의 검술이 펼쳐질 수 있다.

 

그러므로 검객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정확한 판단력을 가져야 하는데, 상대의 발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오른쪽 어깨의 떨림에서 그의 생각을 간파해야 한다. 강호동이 얘기했던 바, 뛰어난 씨름선수는 샅바만 잡아도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검술의 이치는 대인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둘은 일맥상통하며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가 검술서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처세학, 경영학의 이치를 공부하는 자에게도 유용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대인관계를 다룬 수많은 책을 보면 어떤 책은 칭찬이 좋다고 하고, 어떤 책은 공감을 하라고 하고, 어떤 책은 tit-for-tat 규칙에 따르라고 하고, 어떤 책은 유머가 중요하다고 하고, 제각각이다. 그 모든 책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모든 내용은 대인관계의 테크닉에 불과하다. 상대에 따라 적용해야 할 방법이 다르고, 사람마다 잘하는 방법이 다른데, 자만하고 거만한 자에게 칭찬을 퍼부어봤자 콧대만 높여줄 뿐이고, 진지한 사람에게 유머로 대해봤자 실없는 사람 취급만 받을 것이다.

 

대인관계의 핵심은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적절한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둘째 문제이고, 결국 핵심은 상대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다. 연애에 비유해보면 그저 좋은 오빠를 바라는 여자에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고 온갖 진심과 애정을 보여준다고 해서 사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인지 없이는 정확한 대응이 나올 수 없다.

 

대인관계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거리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요즘 걔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어 같은 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에게 허용하는 마음의 정도가 거리인 것이다. 얼마만큼의 거리를 허용하는가, 즉 상대방의 나에 대한 허용거리가 얼마만큼인가 이걸 정확히 캐치하는 것이 거리감각이다.

 

거리감각이 뛰어난 사람의 대인관계를 보면 사람 대하고 만나는 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옆에서 보기에 좀 심한 것 같은 행동도 그 사람이 하면 별 거 아닌 당연한 행동으로 보이고, 뭔가 이상하게 보일만한 만남도 그 사람이 하면 정상적인 친교활동으로 보인다. 무리수 없이, 거슬리는 것 없는 상선약수의 경지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대인관계는 모든 일의 기본이다.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손해도 안 보고, 이익도 본다. 괜히 혼자 마음 삭히다가 썩어문드러지는 일도 없다. 대인관계의 핵심은 거리감각이고,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솔직히 말하면 그냥 right now 바로 지금 거리감각을 키워야 한다. 거리감각이 뛰어나다면 어디 가도 굶어죽지 않고, 어디 가도 환영받으며, 어디 가도 그 집단의 일원으로 녹아들 수 있다.

 

거리감각을 계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경험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부딪혀보고,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는 실수도 해보고, 상대의 마음을 과소평가하다가 호되게도 당해보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떤 사람을 딱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원하는 거리를 파악하고,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어여 당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라. 맨날 보던 사람만 보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거리감각을 갈고 닦자. 인간관계는 때로 지치고 귀찮고 피곤한 일이지만, 또한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위로받고, 힘을 얻고, 기운을 차린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