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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3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보다 나은 수필 '청춘의 문장들'
각종책들2009. 9. 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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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한다. 하루키라고 하면 반가워하며 '상실의 시대'를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데요'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하루키가 수필도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키는 소설도 씁니다 라고 답한다.

그러다보니 상실의 시대도 안 읽었고,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인 '1Q84'도 안 샀다. 하루키의 수필이 새로 나오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 읽고, 헌책방에서 하루키의 옛 수필들을 사 모으는 나지만 소설은 집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하루키는 수필가고, '상실의 시대'를 쓸 때의 이야기인 '먼 북소리'는 좋아하지만 정작 그 산물인 '상실의 시대'는 읽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책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쯤 확인은 꼭 해보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는데 체크하지 않는 이상한 모습인거다.


먼 북소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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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에게 하루키는 수필가라는 아집이고, 순정이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김연수가 그렇다. 김연수는 잘 나가는 소설가고, 지금도 잘 나가지만 10년 쯤 뒤에는 떠르르르 하고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한 소설가다. 그렇지만 김연수도 소설보다 수필을 먼저 읽게 된 까닭으로 내게 하루키 취급을 받고 있다. 김연수는 수필이지. 아무렴.

게다가 그 첫 수필이 워낙 강렬했어야 말이지. 하루키는 처음 읽은 수필은 그냥 담백하다 싶었는데 찾아서 읽다 읽다 보니 이게 은근히 파고들었다면, 김연수는 처음부터 띵하니 충격을 받아서 어디서 이런 수필가가 숨었다 나타났냐고 탄성을 질렀던거다.

그건 처음 읽었을 때의 상황도 연관이 있을 터인데, 하루키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하던 참에 반친구가 가져온 책을 빼앗다싶이 빌려본 터이고, 김연수는 첫번째 소설에 술잔을 앞에 놓고 읽은 터였다. 그 분위기에 김연수라니. 참으로 어울렸다.

그 첫번째 수필이 '청춘의 문장들'이다. 김연수가 젊을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히 천천히, 문장과 엮어서 풀어낸 그 책은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똑 떨어지는 충격과 아련함을 던져줬다.


청춘의 문장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연수 (마음산책,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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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때가 아니면 쓰여지지 않을 비루하고 지리한 일상이 청춘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잠시나마 빛날 수 있다는 것. 어느 청춘이든 그 때는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것. 청춘에 읽었기에 그것이 청춘임을 알 수 있다는 것.

고집스레 잘 나간다는 김연수의 소설을 거부하면서 이 책 '청춘의 문장들'만 계속 파게 하는 그 순정은, 청춘으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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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