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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1 영화 미녀는 괴로워 - 그 웃음과 감동의 비결
각종문화2009. 1. 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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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감독 김용화 (2006 / 한국)
출연 김아중, 주진모, 성동일,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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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미녀는 괴로워'는 추녀가 미녀가 된 뒤의 이야기다. 전신 성형수술을 통해 미녀가 된 추녀는 주위 사람들의 미녀 대접에 기뻐하면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추녀일 때의 습관들이 튀어나오고, '아냐, 나는 미녀라고. 이런 대우는 당연하거야'라고 스스로를 다그쳐보지만 추녀 기질은 어쩔 수 없다. 외면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달리 내면은 여전히 추녀인 여자의 포복절도 코미디다.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라는 측면에서 만화 '미녀는 괴로워'는 만화 '타로 이야기' 와 비견될 수 있다. 만화 '타로 이야기'는 성적 우수, 스포츠 만능, 외모 뷰티풀한 최타로가 주인공이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가난. 10원짜리 하나에 벌벌 떨고 학교에서 남은 급식빵으로 저녁을 먹는,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을 잔뜩 받아 1년치 간식을 마련하는 주인공이다. 타로는 겉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어느 나라 왕자님 혹은 대부호의 아들로 오해받지만 실상은 이처럼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서 경제관념 제로인(그래서 가정경제에 해라도 안 끼치면 다행인) 부모 님에서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소년가장이다. 만화는 타로의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소재로 삼아, 타로의 지극히 정상적인 가난뱅이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굉장히 검소하고 소박한 '부자'의 것으로 오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코미디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의 코미디가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스스로 자각하고 외부의 시선에 민감한 추녀의 좌충우돌 대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타로 이야기'의 코미디는 주인공 타로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 뿐인데 주위에서 이를 오해하는 것에서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동명의 만화를 영화화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 는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원작에 근거하나 그 웃음의 전개에서는 오히려 만화 '타로 이야기'의 스타일을 취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웃음의 첫번째 포인트는 타로이야기에서처럼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전반부 추녀일 때 그녀 자신은 별다른 웃음을 제공하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의 갈굼과 반응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고기를 열심히 주워먹으며 주진모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나에게 친구가 "비계 띠고 먹어, 이년아" 라고 하는 게 그 예이다. 추녀일 때의 한나는 외모가 뚱뚱하달 뿐이지 매우 건전한 마음가짐과 따스한 태도를 지닌 매력적인 여성이다. 쉐도우 싱어 주제에 춤을 추다 무대에서 떨어져 콘서트를 망칠 뻔 했다며 아미가 한나를 구박하는 장면에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따라해야 실감나게 노래할 수 있거든요 이라고 받아치는 한나의 모습에서 추녀라는 컴플렉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가 이런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였기에 관객들은 전신성형수술을 통해 완벽한 미녀가 되어버린 한나에게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만일 한나가 원작만화에서처럼 외모에 컴플렉스를 가져 괴로워하다가 성형을 한 것이었다면 성형에 대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켜 논란이 됐을 수 있는데, 한나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이런 거부감을 희석시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인이 된 한나가 '정말 이쁘다'라고 탄식하고, 거리를 걸으며 'I'm a beautiful girl'을 외칠 때에도 그래그래, 너 이뻐, 참 이뻐 라며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타로 이야기와 차별화된 전략 하나를 더 선보인다. 그것은 바로 한나의 성장드라마이다. 한나는 순진무구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시련을 겪으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저버린다(아버지의 부정).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 솔직히 고백하고(성형사실 고백 + 아버지의 긍정) 내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타로 이야기가 끝까지 일관된 컨셉 하나로 달려가는데 반해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성장 드라마를 추가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성형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부드럽게 가공하는 솜씨를 보인다.

  이런 성장 드라마의 틀 속에서 성형이라는 목표 달성의 수단은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보이는 비정한 신분상승의 욕망이 아니라 아직 철없는 아이의 몸부림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내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기제로 인식된다. 앞서 살펴본 한나의 밝고 순수한 캐릭터와 함께 이 성장 드라마라는 틀은 성형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고, 외모지상주의 영화로 보여지는 함정을 교묘히 빠져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볼 때 감독  김용화 의 능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전작 '오, 브라더스'에서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형제, 조로증에 걸린 동생, 남 뒷조사나 하며 살아가는 형, 이들을 위협하는 조폭 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소재를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휴먼 코미디로 버무려내는 솜씨를 보인 바 있다. 그런 감독이었기에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도 까다로운 요리재료를 맛깔나는 요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립적인 두 사람의 티격태격 코미디에 강점을 가진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처럼 자신만의 코미디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가고 있는 김용화 감독의 다음 작품에 기대가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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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