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책들2009. 1. 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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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을 없게 하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호 (프로네시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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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등의 영향으로 법의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을 줄로 안다. 얼마 전에 방송된 ''조선과학수사대 - 별순검''을 재밌게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위한 책이 나왔다.

무원록 이다. 말 그대로 ''원통함을 없게 하는 책''이다. 조선시대 법의학 수사 지침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웅진에서(정확히 말하면 웅진의 하위출판브랜드에서) ''원통함을 없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책은 각 죽음 별로 서술되어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 불에 타 죽은 시체, 칼에 찔린 시체 등. 각 죽음별로 그 사유로 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요령, 다른 것으로 위장하려고 하는 것을 파헤치는 방법 등이 나와있다. 불에 타 죽은 것인지, 죽인 다음에 불에 넣은 것인지 하는 식이다. 꽤 자세하며 타당한 구석이 있어 머리를 끄덕이게 만드는 면이 있다.

우리 법의학의 가장 큰 특징 - 현대 법의학과 비교하여 - 은 부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SI를 보면 그들은 일단 시체를 확보해서 그걸 부검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부검은 엄격히 금하던 일. 드라마 허준에서 보았듯 시신 부검은 은밀하게만 행해졌다.

시체를 부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죽음의 원인을 밝힐 것인가, 특히 위장된 죽음의 진실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

우리 법의학은 시체에 겉으로 드러난 흔적을 중시한다. 어디에 어떤 자국이 있으면, 어디가 어떤 색을 띠고 있으면 이건 XX때문에 죽은 거라는 식이다. 그것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게 나름 수백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검증방법이기 때문이다. 원래 무원록은 중국에서 쓰던 것을 우리 나라에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바꾼거다. 추상적인 서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면서 끊임없이 보완된 경험의 산물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면 서양법의학, 근현대 과학에 경도된 까닭일 것이다. 귀납법에 의해 쌓이고 쌓인 데이터를 압축해 놓은 휼륭한 법의학 책이다.

예를 들어 시체가 물에서 발견된 경우, 살아서 물에 빠진 것인지, 죽은 다음에 물에 빠진 것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CSI라면 시체를 부검하여 폐를 검사할 것이다. 폐에 기포가 있다면 생전에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호흡하는 과정에서 물이 폐에 들어갔을테니까.

무원록에서는 백골이 된 시체의 두개골에 정수리 부근에 물을 부으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코를 통해 모래나 흙같은 게 나오면 살아서 물에 빠진 거라고 본다. 역시 호흡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코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

ps.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이 책만 읽지말고 서양법의학 책을 놓고 같이 읽으면 더욱 재밌다. 그 차이와 같음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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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