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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1 스타트 -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릴 뿐인데
각종문화2009. 1. 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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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는 달리기 만화다. 야구만화, 농구만화는 많이 봤어도 달리기 만화 본 사람 별로 없을거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일정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만화에서 스포츠는 단골소재이다. 우리가 손에 땀을 쥐며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은 그 자체의 박진감과 흥미진진함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 본래의 특성에 더해 인물들 사이의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버무릴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감동과 재미를 안겨줄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만화는 소재라는 측면에서 기본 점수는 확보하고 들어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작품이 쏟아지기는 한다. 그 스포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얼치기 지식만 가지고 어거지로 우겨넣으려다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나라 스포츠 만화 중에서 일정 이상의 성취를 보인 만화는 별로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헝그리 베스트 5.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저런 걸 영화로까지 만들었으니 안타깝다. 

 스포츠는 규칙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가 그 스포츠의 규칙을 모른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야구만화나 축구만화가 성행하는 것은 그래도 일반인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가 처음 일본에서 연재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농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연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스포츠만화가 자주 등장하면서도 걸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은 흔하지 않은 까닭이다.

 널리 알려진 스포츠를 소재로 삼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달리기라니? 무모한 도전이다. 스포츠가 재밌는 이유가 뭔가? 그건 역전의 감동이 있고, 투혼이 있고,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는 우리를 흥분시킬 수 있다.

 그런데 달리기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마라톤 중계나 100m 경기 중계를 볼 때도 그런 흥분을 느낄 수 있을까? 100m는 어, 어 하는 사이에 끝나버린다. 마라톤도 막판 3km 정도만 관심있게 지켜본다. 심한 사람은 스테디움에 들어선 뒤에만 본다. 달리기는 과정을 즐기기에 적합한 스포츠가 아니다. 이건 달리기가 기본적으로 기록경기이기 때문이다. 1초를 줄이는 노력은 당사자에겐 멋진 일일 수 있지만 관객에겐 그리 재밌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타트'는 달리기를 소재로 멋진 작품이 되었다. 여기에서의 달리기는 '역전 경주'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 하는데, 마라톤을 릴레이로 달린다고 보면 된다. 어깨띠를 걸고, 각 선수가 3-7km 정도의 구간을 달린 후 다음 주자에게 어깨띠를 넘긴다. 7명의 선수가 뛰며 최종 주자의 도착으로 승부를 가린다. 각 구간의 길이와 상태에 따른 선수의 배치가 승부의 관건이다. 달리기라 하면 혼자 열심히 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전 경주'는 개인간의 기록경기인 달리기를 단체경기로 바꿔버린다. 각 선수간의 승리에 대한 집념. 이 구간만큼은 내가 책임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주자에게 어깨띠를 넘긴다는 투혼 등이 빛나는 단체경기가 바로 역전 경주이다. 이런 단체경기적 성격이 있기에 역전경주는 작전과 역전의 맛을 제공할 수 있다. 에이스가 한 명 있다해도 나머지 6명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으며, 선수의 특성에 따른 배치가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우승할 수 없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서 '스타트'의 감동과 재미가 나온다.

만화는 31권 내내 달린다. 주야장창 쉬지않고 달린다. 한 번의 역전경주를 가지고 3-4권은 우습게 쓴다. 달린다는 것에는 특별히 멋진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데, 비슷비슷한 그림을 가지고 31권을 채운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안겨준다. 신기한 일이다. 달리기만 하는데, 과정과 결말도 뻔히 보이는데,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중간에 누군가는 투혼을 불사를 것이며, 또 누군가는 우연한 사고로 쓰러질 것이며, 결국에는 주인공이 필사의 달리기로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이 뻔한데도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등장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달리기 때문일거다. 그 필사적인 노력이 가슴에 와닿아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도 필사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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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