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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1 남자충동 - 남자다워야 한다는 고집의 종말
각종문화2009. 1. 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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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연극열전 시리즈의 4번째, 남자충동. 연극열전 시리즈는 우수한 연극을 레파토리화 하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고, 매년 좋은 연극을 묶어서 무대에 올린다. 2004년 연극열전에는 오구 등이 있다. 남자충동은 97년 조병화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그 해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이다. 작년 아마추어 극단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올해 연극열전 시리즈에 남자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보기로 결심했다. 일주일 전에 예매했는데, a석 몇 자리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A석에서는 대사가 좀 뭉개지는 것 같아 이 점 아쉽다.

남자충동은 목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장정은 3남매의 장남으로 대부의 알 파치노를 가장 존경한다. 그는 알 파치노처럼 '패밀리'를 힘으로써 지키려고 한다. 그의 동생은 여성적인 면을 가진 남자로 강한 남자인 형을 존경하면서도 자신 속에 내재된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막내 동생 달래는 자폐증을 앓는 여자로, 장정이 지키려고 하는 '약함'을 상징한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집을 말아먹는 인물이고, 어머니 박씨는 전형적인 어머니 상이나 말년에 이르러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나는 주체적 인물로 변신한다.

연극은 장정의 가족과 장정의 조폭 조직을 두 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강함'을 신봉하고,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장정이 가족과 조직의 위기를 동시에 겪으면서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그러나 결국 힘 때문에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나는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작품을 좋아한다. '가오'잡고, 괜히 어깨에 '힘 주는' 사람,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텅 비어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툭툭 건들이고 쑤셔서 그들이 가진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작품을 좋아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홍 감독은 특히 '남자' '지식인'이 이중성과 허위의식을 잘 드러내는데 보고 있으면 섬찟섬찟 하면서 은근히 켕기게 만든다. '남자충동' 역시 '남성성'과 '가오'에 목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하고 허황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홍 감독의 영화가 예리한 칼로 슬쩍슬쩍 껍질을 까보이는 거라면 '남자충동'은 정공법으로 나간다. 허위의 껍질이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스스로 균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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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