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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1 즐거운 인생 - 이준익, 그의 마력
각종문화2009. 1. 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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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감독 이준익 (2007 / 한국)
출연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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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에 쓴 글

이준익 감독은 5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키드캅,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그리고 즐거운 인생이다. 이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것은 왕의 남자고,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내서 탄탄한 팬층이 있었던 것은 라디오 스타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2편 보았는데 이 두 편은 아니다. 흔히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2편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본 두 편은 황산벌과 즐거운 인생이다. 키드캅은 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고,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많이 벗어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4편만 놓고 보자면 나는 마이너한 2편만 본 셈이다.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정보는 충분했지만, 결국은 황산벌 1편만 믿고 즐거운 인생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즐거운 인생은 즐거운 영화였다. 유쾌하게 아무런 부담없이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 라고 쓰고 보니 아무 생각없는 킬링 타임용 영화같군요. 표현능력의 부족 때문이겠죠.  생각없는 웃음이 터져나오지는 않지만, 보고 나면 웃게 되는 그런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젊은 시절 밴드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삶에 치인 중년이 되어버린 아저씨들이 다시 모여 밴드를 한다. 이런 스토리 라인은 흔하디 흔한 것이고, 그 전개와 결말도 쉽게 예상가능하다. 그런데 재밌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갈 줄을 뻔히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물을 계속 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준익 감독은 그걸 해냈고, 그래서 재밌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누구나 뻔히 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일이다. 감동적인 김치찌게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걸 잘하는 사람이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연애라는 뻔한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서 내놓는다. 이준익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내놓는데 감동적이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이 김치찌게에 라면사리도 넣고, 육수국물도 새로 내고 해서 퓨전화된 김치찌게로 승부한다면 이준익은 옛날 방식 그대로 담뿍담뿍 끓인 김치찌게로 손님을 모으는 거다.

  이준익이라는 감독의 마력은 여기서 나온다. 비슷한 소재로 만든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뻔한 설정이라는 혹평을 받을 때 '즐거운 인생'은 뻔한 설정으로 칭찬받은 것은 뻔한 것을 뻔하게 요리해서 맛있게 내놓는 이준익의 마력 때문이다.

  '황산벌'도 그랬다. 백제의 마지막 전투. 계백의 비장함이 흐르는 그 전투는 우리가 얼마나 잘 아는 전쟁인가. 자기 자식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자기 가족을 죽여버리고 싸우는 그 전쟁을 버무려 떡 하니 우리 앞에 내놓은 게 황산벌이었다. 싸우고 싸우다 결국은 백제군이 패할 거라는 걸 알고 보는 영화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란 '거시기'로 인해 혼란이 생겼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게다가 '거시기'로 하는 말장난은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재밌었다.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 익숙한 결말로 달려가는데 재밌었다.

  김치 넣고 돼지고기 몇 점 넣고, 양념 적당히 집어넣고 푹 끓여 내놓은 김치찌게. 먹고 나서도 속이 개운하고 편안한 김치찌게. 그게 이준익 감독의 영화이고, 이 감독의 차기작품 '님은 먼 곳에'를 기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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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