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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1 한강 -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의 가운데 연결고리
각종책들2009. 1. 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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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전10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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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건너 한강으로. 그래서 한강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의 전작인 태백산맥, 아리랑과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다.

태백산맥은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독자에게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책이다.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말이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민주주의에 대해 설파하고 싶은 작가의 욕심은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쉽게 드러난다. 그 용어의 과잉과 사상의 내림 앞에서 소설적 재미는 상당히 감소되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빨치산 얘기를 드러낸다는 것, 사회주의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목숨걸고 하는 짓이었고, 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우리 사회에는 없었다. 따라서 작가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땅고르기부터 시작해야 했고, 태백산맥의 현학성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리랑은 그에 반해 구수한 옛날 얘기를 하는 것마냥 쉽게쉽게 읽힌다. 일제시대 얘기를 쓴다는 것,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한 얘기를 쓴다는 것은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일일터이고, 그건 독자들에게나 작가에게나 신명나는 일일 것이다. 소설적 재미는 아리랑이 가장 뛰어나다고 느끼는 것도 일제시대에 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은 두 작품의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한강에서는 아리랑처럼 이야기보따리를 마냥 풀어놓는 식으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지난 수십년의 현대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런 현대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면서 작가에게는 무척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서 작가가 이 사회에 던지는 외침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한참 소설에 빠져들다가도 이런 외침이 나오는 부분에서 한번쯤 발길이 멈쳐지게 된다. 한강이 읽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사를 다루는 소설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고, 단순한 서술만으로는 짚어낼 수 없는 부분들이기에 작가가 굳이 개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문열 평역 삼국지처럼 난데없는 끼어듬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서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있기는 하나 읽다보면 작가 조정래가 이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다.

한강은 왜 우리 사회가 지금 이런 모습인지, 왜 이런 아픔과 모순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고 대답인 것이다. 그래서 한강에서는 현실문제를 짚어나가는 사회학 논문적인 면과 사람들이 생활을 그려내는 소설적인 면이 공존한다. 군데군데 보이는 사회문제에 대한 비평은 이 소설을 그저 심심풀이 읽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폐부를 들쑤시는 죽비로 남게 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 아픔 중 주요한 것은 친일 청산, 지역감정, 독재의 폐해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는 이유, 답답하게 돌아가는 이유를 작가는 이 세 가지에서 찾는다. 이 세 가지는 제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면서 이 사회의 아픔을 만들어내고 그걸 더욱 가중시킨다. 이 세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두루두루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이 소설 하나만 읽어도 따로 현대사 공부가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지난 수십년간의 주요 사건들이 교묘하게 엮여져있고, 이를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소설판이다. 분명 지난 시절 우리 삶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기억 저 편으로 가리워진 일들을 소설은 휼륭히 복원해내고 우리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만든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진짜 언론탄압이 무엇이었으며, 지금 목소리 높이는 자들이 그때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DJ 정권 들어 지역차별 인사가 판을 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지역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승만이 이 나라의 국부라며 칭송하는 자들에게 이승만이 왜 물러나야 했으며 이 사회에 끼친 해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위 박정희 신드롬, 박정희 향수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아직까지도 유효한지 등을 알기 쉽게 동시에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아픔, 모순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이 놈의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울분이 쌓이게 된다. 작가 스스로도 그걸 느꼈음인지 작가는 군데군데 희망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삽입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사회병폐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되는 부정적 인물을 그릴 때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지만,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인물을 그릴 때는 현실의 인물을 쓴다는 것이다. 대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가상의 인물도 있지만 작가는 그 외에도 현실의 인물을 몇 명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태일'과 '김진홍' 목사가 있다. 게다가 작가는 이들의 삶을 보여줄 때는 소설적 창작을 가미하지 않고, 그들의 자선전이나 전기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며,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도 그들은 상당히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마치 영화에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하는 것처럼. 이는 희망이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처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현실의 모순에 절망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희망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현실의 인물을 쓰면 그런 희망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작가로서는 혼탁한 세상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처럼 글을 씀으로써 그에 대한 예우를 다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한강을 읽어내려가는 밤은 행복했다. 없는 돈 털어서 몇몇에게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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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전12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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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 중 일제시대를 다룬 소설. 민족의 아픔은 이 땅에서, 하와이에서, 중국에서 그렇게 삭혀졌다


태백산맥 (전10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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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