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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심플 플랜] 배중사영(杯中蛇影)의 스릴러
각종책들/장르문학2009. 10. 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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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중사영(杯中蛇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나라 때의 일이다. 악광이라는 사람에게는 벗이 한 명 있었다. 자주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언제부터인지 오지 않았다. 악광이 기이하게 여겨 친구를 찾아갔더니 얼굴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친구가 대답했다.

 "전에 술을 마실 때 내 잔 속에 뱀이 보였다네. 자네에게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마신 후에 몸이 안 좋아졌네"

이상하여 조사해보니, 그 때 술자리에는 뱀이 그려진 활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뱀그림이 친구의 술잔에 비쳤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주니 친구의 병이 나았다.

 배중사영이란 아무 것도 아닌데 혼자서 근심 걱정을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고사성어가 잘 어울리는 소설이 있다. 심플 플랜이다.

 
심플 플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스콧 스미스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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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스미스의 데뷔작인 '심플 플랜'에는 스티븐 킹이 적극 추천한다는 홍보문구가 표지에 써있다. 스티븐 킹, 좋은 작가지만 좋은 추천인은 아닌 것이, 그의 추천이라는 말에 속아서 실망한 소설이 어디 한 두 개 였냐는 말이지.

 그렇지만 여기저기에서 좋다는 리뷰가 보이길래 한 번 읽어보았다. 과연 좋았다.

 심플플랜의 설정은 단순하다. 여기 별 볼 일 없는 소시민이 있다. 우연히 비행기 잔해에서 4백4십만달러를 발견한다. 혼자 발견했으면 좋았겠지만 사고뭉치 형과 더 사고뭉치인 형의 친구와 같이 발견했다. 이 철없는 두 사람은 바로 돈을 쓰자고 아우성이지만, 바로 쓰면 잡히는 법. 6개월만 숨겨뒀다가 돈을 나누기로 한다. 단순한 계획. 단순해서 실패할 리 없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돈은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불신을 키운다. 원래도 믿지 못했던 형. 가까이하기조차 싫은 형의 친구. 그는 믿지 못할 두 사람 사이에서 돈을 가진 기쁨과 돈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조바심에 심플 플랜을 조금 수정하기로 한다. 

 아주 조금. 보다 완벽해지기 위한 수정이었지만, 이미 뱀을 봐버린 주인공은 파국으로 빠져든다. 

 실제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사람은 형과 그 친구 뿐이다. 그 위협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다독일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지만 술잔에서 뱀을 봐버린 주인공은 자신을 돕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고, 피를 나눈 형조차 믿지 못하고, 작은 사건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사건을 저지르는 저주의 뫼비우스 띠를 그려나간다.

 
 심플 플랜에서 소름끼치는 묘사나 잔혹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죽음은 나오지만 그 묘사는 심플하다. 무서운 것은 그 죽음이 발생하기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 묘사되는 주인공의 심리다. 단순한 계획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여 주인공을 옳아맬 때 조금씩 미쳐가는, 조금씩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정말 저렇게 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절망과 공포가 마음속에 파고든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 무너졌으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저자의 필력에 내 눈에도 뱀이 씌어버린다.

 스멀스멀 스릴러 - 심플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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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