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29
성수는 담배를 안 핀다. 겉담배도 피워본 적 없다. 담배를 입에 물어본 적은 있다. 그렇지만 불을 붙여본 적은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반면에 술은 마신다. 술마시는 것은 꽤나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빼는 일도 별로 없다. 주량은 그리 세지 않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하고, 가끔씩은 주흥을 돋우기도 한다. ^^
이렇게 술은 마시면서 담배를 안 피는 성수에게 사람들은 잘하는 일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담배 안피는게 연애에 유리할거라며 앞으로도 피지말라고 한다. 고거 동감이다. 담배피는 남자 좋아하는 여자 별로 못봤으니까. 혹자는 성수가 여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비흡연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야.. 그렇지만 분명 담배를 피지않는 것이 플러스 요인인 것 같기는 하다. 요즘엔 흡연자가 설 곳이 점점 없어지는 형편이니까.
성수가 이렇게 술은 마시면서 담배를 피지 않게 된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다. 아버지가 담배를 안 피우시냐고? 무슨 소리. 우리 아버지 애연가다. 정확히 얼마나 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피신다. 나이들면서 끊겠다고도 하시지만 뭐 별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술도 드신다. 주량 꽤나 세고 즐겨 하신다. 그런데 무슨 영향이냐고?
아버지는 내게 담배와 술을 금하였다. 스무살이 될 때까지 담배와 술을 못하게 하셨다. 당신은 다 하면서 내게는 못하게 하셨다. 지금 성수가 아버지 말 잘 듣는 효자라고 생각하고 있나? 그거 실수한거다. 성수가 아버지 말을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아버지는 내가 스무살까지 술과 담배를 하면 유산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_- 무서운 집안이다. 유산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겠지만 난 외아들이니 그래도 쏠쏠하다. 나 혼자 다 가져갈테니까. 그렇다. 성수는 돈욕심에 술과 담배를 안했던 것이다. 무서운 놈이다. 담배는 피지 않았고, 술은 초등학교 때 친구집에 갔다가 보리차인 줄 알고 냉장고에서 꺼내마셨던 버섯술 몇 모금이 다다. 아니다. 어쩌면 초등학교 들어오기 전 어려서 시골에 살면서 막걸리 심부름하다가 조금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엔 없다.
대학에 들어오자 아버지는 술은 허하셨다. 대학생활하면서 술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대학 들어와서 신환회 때 처음 술마셨다.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된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없었다. 그때 처음 소주 1잔 반을 마시고 2잔 반을 마신 경헌이와 같이 집에 가던 기억이 난다. 길을 몰라서 녹두에서 신림역까지 걸어갔다. 그때는 신림역이 더 가까울거라 생각했다. 걸어서 40분쯤 걸린다. 버스는 어디서 타는지도 몰랐다. 몇 잔 술에 취해 헤롱거리며 둘은 걸어갔다. 집에 간게 신기할 정도다. 그때 우리를 챙겨준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동기들은 알아서 택시비까지 줘가며 택시태워보내더만. 그 때 처음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깨달았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더라. 치사한 선배들 같으니라고. 다음해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집에 가는 후배들 꼬박꼬박 챙긴 것은 나와 같이 암담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배는 여전히 금지사항이다. 이젠 유산가지고 협박도 안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성수는 담배를 피지않는다. 이제 정말 말잘듣는 효자가 된거냐고? 에이 설마.. 내가 대학들어간 이후로 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강요하신 적이 없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성인으로 대우받았다. 언제나 내가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신다. 그렇게 내게 떨어진 책임과 권리로 가만 생각해보니 담배를 피울 이유가 별로 없었다. 일단 돈이 아깝고(역시나 돈이 문제였던 것이다), 냄새도 몸에 밴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사귀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씩 담배를 피고 싶을 때가 있다. 방학 때 공부하면서 그런 유혹을 참 많이 느꼈다. 힘들어서인가보다. 뭔가 도피할 곳이 필요했나보다. 담배핀다고 달라질 곳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렇게 도망갈 곳이 필요했나보다. 공부 이외의 것으로도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수험기간이었기에 그런 충동을 수시로 느꼈다. 고3때 갑자기 늘어난 흡연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가해진 요즘은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흡연자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내 여자친구나 부인이 담배를 피면 어쩌지? 평소에 웃기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는 담배 피면서 자기 애인에게는 담배 못피게 하는 남자였다. 자기부터 끊던가. 나야 나부터 담배를 안피니까 담배를 끊으라고 말할 최소한의 자격은 있다. 그렇지만 그의 기호를 내가 뭐라고 방해할 수 있을 것인가? 흡연과 비흡연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인데 내가 그걸 강제할 수 있을까? 강제하는게 옳은 일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가 담배필 생각이 들지않게,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게, 그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다. 적어도 일상에 힘들어서, 지쳐서 도망가기 위해 담배피우는 일은 없게 해주고 싶다. 그냥 기호품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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