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31
어제 '오, 수정'을 또 봤다. 4번째인가 5번째인가 보는거다. 비디오로도 보고, 홍상수 감독 영화 4편을 다 상영하는 행사에 가서 극장에서도 봤다. 반복해서 보는 영화가 몇 개 있는데 외화로는 트루 라이즈가 1위이고, 우리 영화로는 오, 수정이 1위다.
오, 수정은 이중성과 기억에 관한 영화다. 응큼한 속내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러 번 봐도 볼 때마다 재밌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것만큼 보인다. 어제도 한참을 낄낄거리며 볼 수 있었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은주와 정보석의 러브신이다. 모텔에 들어간 두 남녀, 애무에 한창이다. 열심히 가슴을 탐하던 정보석 이제 아래로 손을 움직인다. 이 때 이은주 저지한다. 그리고 대사.
'처음이에요.'
정보석, 순간 놀라며 할 말을 잊는다.
이은주 이어서 말한다.
'처녀에요.'
정보석의 표정에 주목해야 한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어린애마냥 얼굴이 그지없이 환해진다. 입이 귀까지 걸리는 게 뭔지 보여준다.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요?' 라고 묻기까지 한다.
같이 보던 친구가 '남자들은 다 똑같애'라고 말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남자가 그럴거다. 자기가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와 상관없이 결혼할 사람의 처녀성에 신경을 쓸거다. 영화에서 정보석도 이은주와 사귀는 동안 다른 여자와 짙은 애무까지 나눈다. 그리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절대 순결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랬다면 '저도요'라는 정도의 대사를 했겠지. 그러면서 이은주가 처음이라는 것에 굉장히 기뻐한다. 이중적이다.
남성들이 가지는 순결에 대한 태도를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순결해야 한다고 못박는 타입이다. 다른 하나는 크게 신경쓰지는 않지만 처녀라고 하면 기뻐하는 타입니다. 정보석이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처녀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좋아하는 정도. 현실적인 동시에 세속적이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리라 본다. 마지막 하나는 그런 것에 초탈한 타입. 했든 안했든 신경안쓰는 타입이다.
성수는 이 중 마지막 타입이다. 비교적 장담할 수 있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언행일치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이 문제만큼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기본 생각은 이렇다. 순결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순결 개념은 남들과 다르다. 나에게 순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와 만나기 전은 문제되지 않느낟. 중요한 것은 나와 만나 사랑를 한 후의 이야기다. 과거에 아무리 무엇을 했든 함께 한 후에 서로에 대한 신의를 지킨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과거는 묻지 않지만 현재는 확실히 묻는다 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 순결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직업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사람도 순결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로 따져보면 기생과도 사랑을 할 수 있고, 기생도 순결을 지킨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잤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순결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순결이란 그런 것이다. 처녀막 따위로 규정짓기에는 순결은 고귀한 개념이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순결을 지키는 것은 존중할만한 일이다. 내가 뭐, 프리 섹스나 순결을 지키는 것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억압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순결을 지키든 그렇지 않든 그건 본인의 선택일 뿐이라는거다. 거기에 대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는거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일치하게 상대의 선택에 반응을 보이기 바란다. 정보석처럼 자기는 아닌 쪽을 선택했으면서 상대의 지키는 선택에 대해 좋아하는 것은 이중적이다.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좋다. 선택에 기뻐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건 자신의 위선과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자기는 아니면서 상대에게만 강요하는 것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자기는 아니면서 상대의 순결에 대해 기뻐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니 상대에게 순결을 바란다면 자기도 지킬 것이며, 자신이 그렇지 않다면 역시 바라지 않을 일이다.
예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 잤다 라는 게 왜 문제가 되는걸까? 사람이라면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동안 무엇을 하든 그건 두 사람의 선택이다. 그들의 사랑에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 뿐이다. 사랑은 이래야 한다 라는 규정은 없다.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난 후 다시 나를 만나게 된 건데 과거의 사랑을 따져서 무엇할까? 우린 우리의 사랑을 새로 만들어나가면 되는거다. 과거의 사랑을 물고 늘어지기에는 우리의 사랑을 할 시간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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