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를 담양으로 갔다. 쏟아지는 업무를 핑계로 한 게으름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생각난 곳이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정원(별장?)이다. 책에서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소쇄원에서 술을 마시면 참 맛있다는 대목을 읽어서 알게 된 곳이다. 비 쏟아지는데 술마시면 어디든 안 좋겠어 라고 생각하는 바람직한 주도인도 있겠으나 장소가 좋으면 술맛도 더 좋다는 건 양조장 아들이 아니어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 운치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 담양으로 갔다.
서울에서 담양 가는 버스는 하루에 2번 있다. 해서 광주를 거쳐 담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광주에서 담양은 가깝다. 40분 정도 걸린다. 비용은 천 몇백원 정도. 담양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이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터미널을 나와 한 바퀴 돌아본다. 몇 바퀴 더 돌아본다. 계속 도는 김에 담양관광안내도도 계속 본다. 어디를 가야할지는 알겠다. 어떻게 가야하는지가 문제다. 돌다가 목이 말라 물도 한 병 사마셨다. 자, 이제 생각을 정리하자. 돌다보니 택시가 보였다. 버스는 안 보였다. 택시는 두 종류가 있었다. 보통의 개인택시와 빨간 색의 관광택시. 관광을 왔으니 관광택시를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탔다.
서울에서 혼자 구경왔는데 소쇄원, 가사문학관, 면앙정 등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럼 시간으로 끊으시죠. 시간으로요? 얼만가요? 시간당 2만원입니다. 그게 메다기로 하는 것보다 싸게 먹히죠. 가사문학관은 옛날 종이 좀 있고 별로 볼 것이 없고, 소쇄원이랑, 면앙정 이런 데는 가볼만해요. 그리고 거시기 명옥헌은 꼭 가봐야죠. 배롱 나무가 참 이뻐요. 그럼 몇 시간 정도 하면 될까요? 글세 저기 대나무박물관 이런 데는 안 가시고? 그 쪽은 그다지. 그럼 3시간 정도면 될 듯 한디. 음...2시간 반 5만원에 맞춰주세요. 그럴까요? 그럼 메다기 끕니다.
그렇게 담양투어는 진행되었다. 햇볕이 뜨겁고 더운 날에. 29살 먹은 남자가 50은 넘어보이는 택시아저씨와 함께 담양을 여행했다. 관광택시는 담양군에 특별히 육성한 것으로, 관광가이드 교육을 시킨 택시에게 운행허가를 내준 것이다. 2시간 반 동안 담양의 주요관광지를 돌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혼자 갔으면 찾아가지도 못했을 곳을 편안히 이동하면서 설명도 들었으니 5만원이 아깝지 않았다. 2-3명이 놀러가는 거라면 관광택시 이용할만하다.
소쇄원은 작다. 입구의 대나무밭을 지나면 작은 계곡이 흐른다. 그 계곡을 건너면 정자가 2개 있다. 정자의 벽은 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위로 올리면 사방으로 뚫린 공간이 되어버린다. 앞으로 물이 흐르고 바람이 솔솔 부니 참으로 시원하다. 비가 와서 계곡으로 물이 흐를 때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 깜깜하니 빗줄기에 가려진 사방이 가슴에 술을 붓고, 술향기 실은 바람에 대나무가 우는 곳이다.
면앙정과 식영정은 전망이 좋다.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게 높은 곳에 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눈에 가득 들어오는 평야다. 명옥헌은 구석에 숨어 있다. 꼬불꼬불 길을 들어간다. 배롱나무가 여기저기 피어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다. 꽃이 3번 피면 쌀이 나온다는 나무다. 붉은 꽃이 피어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길 양쪽으로 쭉쭉 큰 가로수들이 서있는 길이다. 꽤 긴 길이 쭉 나있어서 걸을만하다. 죽녹원은 대나무를 테마로 한 공원이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다. 대나무를 잔뜩 심고서 길을 여기저기 낸 뒤에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추억의 길, 사색의 길 이런 식인데 별 특색은 없다. 그래도 선선하니 걷기 좋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으면 참 인기 좋겠다 라고 생각했더니 아니나다를까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러온다 한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곳인데 이를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대나무 박물관도 있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관방제림은 수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놓은 곳인데 지금은 나무가 크게 자라 그럴듯한 경치를 볼 수 있다.
담양은 특별한 체험이나 짜릿한 경험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정자가 많고 길이 잘 되어 있어서 조용히 사색하고 소요하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고 곧은 선비의 표상인 대나무처럼 홀로 뚜벅뚜벅 맑은 공기 마시며 걸으며 즐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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