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문화2009. 3. 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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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일이다. 선후배 관계가 나름 엄격한 학교였는데, 그게 드러나는 것이 학기 초에 2학년들이 1학년을

정신교육시키는 모습이었다. 선도부를 중심으로 2학년들이 1학년 교실에서 또는 강당으로 1학년들을

집합시켜서 교육을 시켰다. 선배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것.


스쿨버스에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했다.

학교 가는 교통편이 불편했기에 스쿨버스는 인기였고, 자리가 충분치 않았다.

2,3학년들은 앉아 가지만, 1학년은 서서 가야 했다. 하교길에 먼저 내리는 선배가 있어서 자리가 생겨도

1학년은 마음대로 빈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누군가 선배가 앉으라고 해야 앉을 수 있었다.

새로 들어온 1학년이 처음부터 이런 규칙을 알 수는 없는 일. 멋모르고 앉아 있다가

한 소리 듣는 애들이 몇 명 있은 뒤에야 질서가 잡혔다.


앉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아침 6시에 타는 등교길의 스쿨버스는 수면실이다.

어떻게 겨우 잠을 깨어 허겁지겁 탄 버스이기에 타고 나면 잠에 빠져들었다.

자리에 앉은 2,3학년은 그렇지만 1학년이 문제라. 시간이 좀 지나면 버스통로에

서서 자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지만 처음에야 어디 그런가. 선배가 앉아있는

의자의 옆면에 기댈 수도 없으니 불편하게 서 있는 등교시간이다.


잠이 안 오는 1학년이 할 게 뭐 있겠는가. 수다다. 조용한 버스 안이기에 자기들 딴에는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린다고 하지만, 입시에 지친 2,3학년들의 신경을 거슬리기에는 충분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2,3학년들이 불만이 쌓여갈 즈음, 2학년이 1학년을 소집한다.

스쿨버스에서의 예의와 자세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3학년 때의 일이다. 아침에 스쿨버스에서 내리는데 먼저 내린 1학년 여학생들이 가지 않고 버스 앞에 모여 있었다.

뭔가 싶어 보고 있으려니, 잠시 후 2학년 여학생들이 얘들을 이끌고 한 쪽 구석으로 간다.

아하, 교육이로군. 등교버스 안에서 조용히 끝나고 모이라는 통문이 돌은 모양이다.


원을 동그랗게 그리고 1학년들은 머리 푹 숙이고 듣고 있고, 2학년들이 군기를 잡는다.

누가 채찍을 들고 있나 봤더니 어라, 중학교 고등학교 1년 후배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몇 명 안 되는 후배인지라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다. 나한테는 헤헤거리며 잘 웃는 후배일 따름이었는데

저기서는 눈에 힘 팍 주고 1학년을 단도리하고 있었다.


선도부라서 아침에 정문 앞에서 쭈욱 서있는 모습은 봤었지만 2학년이 3학년을 잡을 것도 아니고

지나갈 때면 한 번 씩 웃어주고 지나쳤던 녀석인데, 이제 보니 제대로 된 선배의 모습이다.


그런데 스쿨버스에서 남자후배들은 조용하고 여자후배들만 떠든 것이 아닌데, 여자후배들만 소집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3학년 여학생들이 1학년들 교육 좀 시키라고 2학년들에게 한 소리 한 모양이었다.

2학년들도 바짝 긴장해서 1학년을 바로 소집한거고.




개그콘서트의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보고 한참을 뒤집어지며 웃다가 고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다.

그 때의 후배는 지금의 안영미 같은 위치였을거다. 위로는 하늘같은 선배 강유미(=3학년)이 있고

밑으로는 개념없는 후배 김경아, 정경미(=1학년)이 있는 위치.

안영미 / 개그맨
출생 1983년 11월 5일
신체 키16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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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에게는 말 잘 듣는 후배고, 후배들에게는 엄격한 선배여야 하는 위치.

자기는 주무시는 선배들 깰까봐 숨소리도 못 냈는데

이 개념없는 철부지 1학년들은 뭐가 그렇게 힘이 남아돌아서 떠드는지 열은 받았고.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선배들에게 한 소리 듣고 나니 더욱 열받고.


그 애매한 위치에서 후배들을 잡아채니 욕은 욕대로 위아래서 먹고, 군기는 잡아야겠고,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코믹한 분장을 한 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안영미를 보며 가운데 낀 자의 고충을 느낀다.


위아래로 치이던 2학년 여자 후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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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3. 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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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남자가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제목에서 남자라고 못을 박았으니 이 사람밖에 주인공이 없다.
여자들도 몇 몇 있지만 조연급이다.

이른바 원탑 드라마다. 영화에서는 원탑 영화가 종종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드물다.

2시간 안팎의 영화와 수십 시간 짜리 드라마의 차이다. 원탑으로 해서는 드라마 소재가 부족해지기 쉽다.

'대장금' '태왕사신기'같은 드라마가 원탑드라마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한 명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원탑드라마가 맞긴 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웅 드라마'를 진정한 원탑드라마라 할 수 있을까?



대장금
채널/시간
출연진 이영애(서장금), 지진희(민정호), 임호(중종), 양미경(한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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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장금이가 어떤 아이였고, 어떻게 컸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요리를 배우는지 다 봤다


 

2. 결혼

결혼은 10대도 20대도 할 수 있지만 역시 30대에 어울리는 단어다.
결혼의 달콤함과 쓴 맛을 간접체험하는 나이, 해야 한다는 압박과 짝이 없다는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나이
그게 30대다.
영화 싱글즈의 주인공들이 29인 것은 결혼이 큰 무게로 다가오는 30대를 바로 앞둔 나이이기 때문이다.

싱글즈
감독 권칠인 (2003 / 한국)
출연 장진영, 이범수, 엄정화,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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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즈의 네 남녀. 이제 이들도 30대 중반이 되었을텐데, 그 뒤 이야기를 다루는 싱글즈 2는 안 나오려나?



그런 30대마저 넘어버린 40대, 그게 주인공의 나이다.
큰 애가 있어도 있을 나이에, 결혼에 대해 경험자로서 충고를 할 나이에 마주치는 결혼이라는 낱말,
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결혼이다.


3. 결혼못하는

골드미스와 노처녀의 차이? can not과 do not의 차이다. 살빼려고 하는 다이어트와 돈 없어서 굶는 것의 차이다.
결혼을 못한다는 건 하자가 있다는 것.do not이다.
결혼을 못한다는 이 남자, 그런데 겉으로는 멀쩡하다.

아베 히로시 (阿部寬, Abe Hiroshi) / 일본배우
출생 1964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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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서 이렇게까지 멋있는 모습으로는 안 나오지만 괜찮게 생겼다. 옆집의 미치루가 말하듯이 '사진만 보면 멀끔하게 생겨서 맞선보러 나갈 정도'는 된다. 직업은 건축가. 자기 일에서는 확실히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취미는 클래식 감상인, 혼자 요리도 해먹는다. 살고 있는 집은 집세가 비싼 오피스텔.

객관적으로는 휼륭한 이 남자, 주관적으로 문제다. 타인과 어울리길 거부하는 마이웨이에, 입만 열면 시니컬한 말투가 나오고, 고집은 또 그런 고집이 없다. 일이라도 잘하니 다행이지, 고객들과 충돌하기 일쑤고, 건설현장에서는 싸움질이다.

드라마의 전반부는 이렇게 이 남자가 왜 결혼을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4. 그리고 .... 여자들

결혼못하는 남자에 포커스가 맞춰지지만 그 대척점으로서 여자들도 나온다. 여자 주인공이라 할 정도의 비중은 없지만 개성있는 캐릭터의 여자 조연들이 있다. 

나츠카와 유이 (夏川結衣, Natsukawa Yui) / 일본배우
출생 1968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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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대등하게 맞서는 여자 캐릭터. 성격이 강하면서도 유한 면이 있어 똑부러지지만 차갑지는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근데 사진은 왜 이러냐 -.-)

쿠니나카 료코 (國仲凉子, Kuninaka Ryoko) / 일본배우
출생 1979년 6월 9일
신체 키158cm, 체중4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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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옆 집에 사는 20대 아가씨. 평범한 직장인 여성으로 전형적인 20대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주며 남자의 독특한 성격을 극대화시키는 캐릭터다.

다카시마 레이코 (大崎禮子, Takashima Reiko) / 일본배우
출생 1964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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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직장동료. 남자가 저지르는 온갖 사고를 수습한다. 남자를 보완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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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3.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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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런던은 매혹적인 도시. 잘 나가는 대영제국의 영광으로 전세계의 부가 집결하는 곳이 런던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동서양의 문화가 몰려들어 이국적인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이 때의 런던은 시대물의 배경으로서도 휼륭하지만 그 개방적이고 국제화된 모습으로 현대물의 공간으로도 손색없다. 19세기 런던에 21세기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이런 독특한 매력이 넘치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만화에 엠마(emma)와 흑집사가 있다. 전자가 귀족과 maid의 사랑을 그린 멜로물이라면 후자는 절대복종으로 맺어진 귀족과 집사의 활동을 그린 코믹물이다.


엠마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KAORU MORI (북박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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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19세기 런던의 두 가지 매력 중 엠마(emma)는 신분제도의 견고한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온 사랑을 그리기에 억압되고 제한많은 19세기 런던을 모습을 활용한 것이고, 흑집사는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코믹을 그리기에  21세기다운 발상을 드러내기 위한 공간으로서 런던의 개방적인 모습을 활용했다.


흑집사. 5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YANA TOBOSO (학산문화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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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emma)는 그렇다.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답답하다. 독자는 다 알겠는데 자신의 감정에 어찌나 둔한 주인공인지. 알고 나서도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는데 소심하다. 그렇기에 두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툭 터버리는 포옹 에 가슴이 찡해지는 것이다.



흑집사는 그렇다. 주인공은 캐릭터가 분명하고, 자유롭다. 귀족은 자의식이 강하지만 상처를 안고 있는 천재형 소년이고, 집사는 만능이고 절대복종하지만, 충성하지는 않는 전지전능형 수족이다. 둘은 굳게 연결되어 있지만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 때문이다. 흑집사는 마음으로부터 충성하는 게 아니라 계약에 기해 복종할 뿐이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감정에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다. 두 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좌충우돌 대소동에 웃고 뒤집어지면 그뿐이다.

 

양자의 차이는 동양 출신 조연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영국에서 동양 출신이라 하면 나른하고 느긋한 자유로운 왕족(귀족)이거나 복종하는 노예,하인으로 인식된다.

두 만화에서 동양 출신 왕족이 조연으로 나오는데 둘 다 이런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역할은 다르다. 엠마(emma)에서는 신분과 사회의 제약으로 사랑에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데 반해, 흑집사에서는 자유롭게 활기찬 만화의 분위기를 더욱 업시키고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다루는 두 작품. 당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린 엠마(emma)와 현대적 이야기로 버무린 흑집사. 이 두 만화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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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2.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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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
감독 박철관 (2001 / 한국)
출연 박신양, 정진영, 박상면, 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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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야 놀자'는 우리 영화의 흐름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영화이다. 한국영화계를 관통한 주요코드인 '조폭'을 수용하면서도 불교라는 전혀 상반된 정신적 흐름을 타고 있기도 하다. 제목에서부터 '불교'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으며 영화내용 곳곳에도 불교의 색채가 드러난다. 조폭과 스님의 대치구도에서 이질적인 두 집단간의 갈등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스님과 가장 대립적인 조폭을 통해 불교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조계종에서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불교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전격적으로 협력하였다 한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달마야 놀자' 속에 숨어있는 불교 코드를 짚어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선불교에서는 선문답이라고 해서 저게 뭔 말이야 싶은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은 더욱 뚜렷하다. 논리적인 연관 속에 성경에 근거하여 딱딱 맞아떨어지는 교리를 가진 기독교와 달리 불교에서의 가르침은 불경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측면이 강하다.

 스승이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그건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데 불과한 것이며 종국에는 수도자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물론 종교에서의 논리성과 합리성이란 다른 학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믿음과 복종,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 사이에 상대적인 논리성, 합리성 비교는 가능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불교보다 상대적으로 논리적 연관성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염화시중(염화미소)라는 말은 이런 불교의 특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달마야 놀자 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찾겠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가기만 해서는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서툰 손길로나마 더듬더듬해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각종 영화 리뷰에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은 바로 조폭과 스님과의 대결 씬이다. 산에 머무르려는 조폭과 나가게 하려는 스님과의 대결은 마지막으로 주지스님에 의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 라는 것으로 결판나게 된다.

 속담이 상징하는 바대로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깨어진 부분을 다른 것으로 막으면 안된다는 조건까지 걸려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 때 스님들은 주지스님이 자신들을 이기게 하기 위해 이런 내기를 하시게 한 것이라며 기뻐한다.

 스님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굉장히 현학적이며 철학적인 것이다. 한 스님이 독 안에 들어간 뒤에 '이 마음이 물이요, 이 몸이 곧 물입니다. 독 안에 제가 들어왔으니 이는 독에 물을 채운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멋드러져보이는 대답에 주지스님은 진짜 물을 채우라 그랬지 언제 그런 짓을 하라고 했느냐고 타박한다.

 이에 조폭들은 밑빠진 독을 연못에 던져 물을 채워버리고 대결의 승자는 조폭들이 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할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밑빠진 독이라는 것은 번뇌의 사슬과 인연의 고리에 얽매여 있는 중생을 의미한다. 이런 번뇌와 고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중생은 아무리 수행을 열심히 하더라도 밑빠진 독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스님들처럼) 철학과 현학의 세계에 빠져들어 경전을 파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으며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도는 공부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깨달음을 통해, 인연과 번뇌의 고리를 끊어버려야 구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순간(=독이 물에 빠지는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독을 물로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묵언 수행을 몇년째 하던 스님이 369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조폭들의 실수를 지적하려고 묵언 수행을 깨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묵언수행이 깨진 스님은 엄청난 수다쟁이가 된다. 이런 설정은 영화 후반부에서 쓸만한 웃음장치로 쓰인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연출된 아이러니한 상황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대결에서 계속 지게 되자 한밤중에 스님들이 모여 대책회의 비슷한 것을 한다.

 그때 묵언수행을 하던 스님이 자기는 묵언수행까지 깨가며 이기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거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슬그머니 다른 스님이 이렇게 묻는다. '스님, 묵언수행을 깰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리고는 잠깐의 침묵 뒤에 또다른 스님이 말을 꺼내서 장면이 전환되어 버린다.

 이 대목 예사롭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조폭들이 절에 들어옴으로써 청정한 도량의 평온은 깨져버리고, 묵언수행에서 알 수 있듯히 그동안 스님들이 해오던 수행들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 분노해서 스님들은 조폭들을 산에서 몰라내려고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그런데 묵언수행이 깨진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묵언수행은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약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스님의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대단한 것이어서 묵언수행이 깨지자마자 수다쟁이로 돌변해버릴 정도다. 이처럼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제약하고 금기시하는 수행을 한다고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묵언수행이 깨진 이유를 생각해보자. 묵언수행은 369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깨졌다.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이 다른 욕망에 의해 깨져버린 것이다. 조폭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이 수행을 해친 것이다. 조폭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절대적인 불안요소가 아니라 삶과 수행 중에 마주칠 수 있는 무수한 고민과 갈등의 하나일 뿐이다.

 즉 조폭이 아니라 하더라도 묵언수행은 언젠가 다른 이유에 의해 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궁극적으로 깨달음이라는 욕구를 이루기 위해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억압한 결과다. 깨달음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번뇌의 씨앗이며 수행에 방해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에 대한 욕구를 조폭들 때문에 방해받자 이를 제거할 욕심에 묵언수행을 깨게 되는 악순환이 나온 것이다. 이렇듯 묵언수행은 언젠가 깨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조폭에 의해 묵언수행이 깨지고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맘껏 발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스님은 깨달음에 대한 욕구를 버리고 결과적으로는 깨달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즉 욕망의 부정과 금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묵언수행이 깨졌다하여 뭐라 할 것 없다.

 그 외에도 여러 장면이 있다. 자신들을 왜 받아들였냐는 조폭의 질문에 너희가 깨진 독을 물에 던져넣듯이 너희들을 내 마음에 던져 넣은 것이라는 주지스님의 말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자대비의 마음씨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조폭들이 불상의 귀를 떨어지게 하는 사고를 치자 스님들이 주지스님에게 달려가 이를 고해바치고 불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소리높일 때 주지스님이 '불상이 부처냐? 불상은 그저 불상일 뿐이다. 떨어진 귀는 다시 붙이면 되는거지 뭐에 그리 큰일이냐고 난리를 치는거냐?'라고 호통치는 장면도 있다. 이건 불교의 정신보다는 현실적 이익, 현실적 모습에만 관심이 있는 불교 종단에 대한 경고다.

 결론적으로 곤란을 피해 산사로 달아난 조폭들을 수용하지도 못하고, 단지 자신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내쫓으려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종교란 세속과 유리된 신성한 것이며, 세속의 일은 종교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종교란 이런 것인가? 현실세계, 세속에서의 어려움과 고민, 갈등, 방황을 질문하고, 그런 것으로부터의 안식과 평온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그런데 종교라는 것이, 종교인이라는 사람이 세속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성채에 틀어박혀 깨달음을 구하려 한다면, 과연 그걸 진정한 종교,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조폭과 스님과의 대립구조, 산사와 세속이라는 장소의 대립을 통해 산에만 머물고 있는 종교가 세속의 품에 뛰어들어 세속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영화를 그냥 단순한 조폭물 중 하나로만 받아들이거나 한 편의 해프닝을 보여주는 코미디영화라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영화에서 저런 불교적 가르침을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보고 적극 지원한 조계종의 혜안은 놀라울 따름이다. 맨날 쌈박질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를 보니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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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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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왕자. 12(애장판)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NANPEI YAMADA (학산문화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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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차왕자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만화다. 보름달이 비치는 밤에 홍차를 마시며 주문을 외우면 '홍차왕자'가 나타난다. (홍차공주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이런 기본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만화가 진행된다.

 이 홍차왕자는 굉장히 유용하다. 평소에는 조그맣게 있다가 필요할 때면 펑하고 커진다. 조그마할 때는 귀여운 인형이고, 커지면 멋진 꽃미남이다. 소원은 3가지밖에 말할 수 없고, 세가지 소원을 다 들어주면 떠나버리지만 그 동안에 이런저런 일을 많이 도와준다. 홍차왕자 중 '아삼'은 투덜거리면서도 집안일을 다 맡아하고, '얼 그레이'는 항상 따뜻하게 옆에서 자신을 부른 주인을 돌봐준다. 심심할 때는 인형처럼 귀여운 재롱을 볼 수 있고, 힘들 때는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짐이 많을 때는 짐꾼으로 쓸 수도 있다. 꽃미남이기 때문에 미남계를 쓸 수도 있고, 호객꾼으로 쓰기에도 좋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원을 말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유용한가.

 그렇지만 언젠가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은 홍차왕자와 주인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소원을 가능한 말하지 않으려 하고 어쩔 수 없이 소원을 말하면 남은 소원이 몇 개 없음에 괴로워한다.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계약관계, 주종관계가 아니다. 가장 좋은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 사이일 수도 있다. 레이디와 나이트일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기에 고민은 커져만가고, 행복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진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친구 사이라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언젠가는 갈라질 수 있다. 평생을 함께 하는 우정, 영원한 사랑은 현실 세계에서 쉽지 않다. 오히려 어느 순간인가 깨어지거나,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일이 더 많다. 현실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세가지 소원을 말할 때까지는 항상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게 아닐까? 홍차왕자는 제한된 시간이나마 확실히 곁에 있어준다. 게다가 소원만 말하지 않는다면 홍차왕자는 죽을 때까지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우정은 영원할 수 있는 반면에 불확실하다.

 그렇게 보면 홍차왕자와 주인을 묶고 있는 '세가지 소원'은 둘 사이의 품질보증서라 할 수 있다. 그 기간만큼은 확실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기간이 지나면 그럴 수 없는 품질보증서. 사랑도, 우정도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은 사랑의 영원함을 믿어도 아무도 그것을 보장해줄 수 없는 현실에서, 확실한 품질보증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든든한 일인가.

 불확정성을 제거하는 대신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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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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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2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MASAMI TSUDA (학산문화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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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그 남자 그 여자'에는 수많은 커플들이 나온다. 등장인물마다 제각기 짝이 있다. 커플이 아닌 채 솔로를 유지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이다. 아시바. 그렇지만 그는 분명 커플이 될 수 있는 능력자이다. 여자를 좀 밝히긴 하지만 그만한 킹카도 없다. 그러나 그는 커플이 아니다. 그건 그가 아직 제 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여자와 커플이 될 수 있지만 그러긴 싫어. 나와 정말 맞는 한 사람하고만 사랑할거야.' 부러운 말이다.

 아시바의 저 말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 이 만화는 기본적으로 연애물이다. 그런데 연애물치고는 특이하게도 사랑을 둘러싼 전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수많은 커플이 있음에도 이 만화에서 커플관계는 명확하다. 딱딱 둘씩 맞아떨어지고, 그들 사이에 엇갈리는 화살표는 없다. 약간 미묘한 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친구와 동생으로서의 감정과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착각한데서 오는 것일 뿐. 본격적인 삼각관계는 보이지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잘 맞는다. 천생연분이라는게 있다면 바로 각각의 커플일 것이다. 각자는 각자에게 찰떡궁합인 것이다. 아시바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거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제 짝을 만났다. 너무나 잘 맞는 사람.

 그래서 각각의 커플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란 전혀 없다. 너무나 꼭 맞아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그들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어떤 멋있는 사람이 끼어든다 하여도 그들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 사람이 아니면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은 별로 가능하지 않다. 우린 모두 자기의 짝을 찾기 위해 헤맨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이 운명의 여신이 정해준 제 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채 그냥 체념하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살다 죽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며 '정'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처음에는 맞지 않던 톱니바퀴가 세월에 깍이고, 서로에게 부딪혀가며 점점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짝을 만들어간다. 이건 만나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거고, 익숙해져가는거다.

 둘 중 어느 경우가 더 좋을까? 자기에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 전자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후자는 가능성 풍부 + 오랜 기다림일 것이다. 어떤 경우든 좋다. 내 짝이 내 옆에 있기만 한다면 어떤 경우든 좋다. 그러기만 한다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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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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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항로 28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이학인 (대원씨아이(주),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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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만화 '창천항로'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삼국지를 '조조'중심으로 그려낸 만화입니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이를 바탕으로 한 것들도 엄청나죠. 그중에서 '유비' 중심의 삼국지에 반발하여 '조조' 중심으로 새롭게 삼국지를 해석하는 작품의 수도 꽤 많습니다. 조조가 너무 저평가되었고, 유비는 낡은 시대의 잔재에 집착한 인물에 불과하다는거죠. 대표적으로는 '고우영 삼국지', '이문열 평역 삼국지'등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식의 작업은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니라 한중일 3국에서 공통적으로 있어왔습니다. 이문열은 자기가 새롭게 시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조조를 재평가하는 작업은 끊임없이 있어왔죠. 이 작품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 '창천항로'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먼저 '창천항로'는 정사를 중심으로 그린다는 겁니다. 유비 편을 들게끔 만들어진 '삼국지연의'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이문열은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조조를 띄우려 했기 때문에 평역이라는 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소설적 재미를 떨어뜨리며 글의 흐름을 자르게 되었던 것과 비교할 때 '창천항로'의 이런 전략은 무척 현명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창천항로'의 작가는 정사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극적 재미와 조조에 대한 새로운 평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창천항로'는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을 조조 입장에서 새로이 구성하여 멋지게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조의 잔인함과 냉정함을 보여주는 '여백사 일가 살인사건'에서 이문열은 그걸 번역한 후에 정사를 좀 인용해서 조조에 대한 비난을 희석시키려 하지만 '창천항로'에서는 여백사를 실제로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속이고서 여백사를 조조의 대업을 돕는 그림자 지원 세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럼으로써 조조의 준비성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드러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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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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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을 봤던 드라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유명한 배우 하나 없이도 이야기가 짜임새 있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 'friends'의 로스가 나오길래, 주인공이다 싶었다. ross가 찌질하게 굴어서 주인공이 이렇게 망가져도 되는거야? 뒤집는 맛이 있는 드라마군 하고 생각했다. 틀을 깨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ross가 주인공이 아니었을 뿐이다. 윈터스 대위라고 이상적인 군인이 나오길래, 이 사람이 주인공이군 하며 1편을 열심히 봤다. 그랬더니 2편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중심으로 나선다. 바뀌는 중심인물을 따라 몰입하다보니 전쟁이 끝났다.

 입대하여 훈련을 받으면서 band of brothers 생각을 많이 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게 이런 의미구나를 깨달으면서 디테일이 뛰어난 드라마라고 칭찬받았던 까닭도 알게 되었다. 아는만큼 보이는거다. 대단할 줄도 모르는 청맹과니 눈에도 대단해 보이는 드라마라니. 태양은 침침한 눈에도 빛나보인다.

 장교가 되어 드라마를 봤다. 재밌게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훈련이 떠오른다. 맨몸으로 편안히 보는데 어깨에 군장이 얹혀져 있는 것 같고,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관등성명이 튀어나올 것 같다. 병사의 부상에 내 몸이 떨려오는 건 몰입했다는 증거일 터. 저리는 가슴에 몰아보지 못하고 한 편씩, 그것도 끊어서 보고 있다. 

 끊어보든 몰아보든, 새롭게 보이든 새삼스레 보이든, 군인으로 보든 민간인으로 보든 좋은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다. 누가 봐도 언제 봐도 좋은 것은 없지만, 내가 보고, 지금 봐도 좋은 드라마는 있다. band of brothers가 그렇다. 물론 10년 뒤에 한 번 더 확인해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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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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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2007 / 일본)
출연 나라 유리에, 도이 히로키, 야마구치 토모코, 나가시마 카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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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리뷰
** '독한 것들'을 따온 리뷰


난 지금부터 '벼랑 위의 포뇨'를 보고 행복에 젖어있는 모든 사람들의 환상 다 깨놓을겁니다. (독해~~)

포뇨가 여자아이가 되어서 소스케랑 같이 살게 되어서 기쁘시죠?

잘 생각해 보세요. 포뇨 이제 마법 못 '씁니다. (독해~~)

그냥 쿵쾅쿵쾅 뛰어다니며 사고만 치는 5살짜리입니다. (독해~~)

그래도 귀엽다고요?

귀여운 거 금방입니다. 그 귀여운 미소에 소스케 모자 낚인 겁니다.

포뇨네 아빠, 엄마가 웃으면서 포뇨를 보내주는 걸 보셨다면.....

100% 입니다.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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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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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연극열전 시리즈의 4번째, 남자충동. 연극열전 시리즈는 우수한 연극을 레파토리화 하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고, 매년 좋은 연극을 묶어서 무대에 올린다. 2004년 연극열전에는 오구 등이 있다. 남자충동은 97년 조병화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그 해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이다. 작년 아마추어 극단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올해 연극열전 시리즈에 남자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보기로 결심했다. 일주일 전에 예매했는데, a석 몇 자리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A석에서는 대사가 좀 뭉개지는 것 같아 이 점 아쉽다.

남자충동은 목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장정은 3남매의 장남으로 대부의 알 파치노를 가장 존경한다. 그는 알 파치노처럼 '패밀리'를 힘으로써 지키려고 한다. 그의 동생은 여성적인 면을 가진 남자로 강한 남자인 형을 존경하면서도 자신 속에 내재된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막내 동생 달래는 자폐증을 앓는 여자로, 장정이 지키려고 하는 '약함'을 상징한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집을 말아먹는 인물이고, 어머니 박씨는 전형적인 어머니 상이나 말년에 이르러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나는 주체적 인물로 변신한다.

연극은 장정의 가족과 장정의 조폭 조직을 두 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강함'을 신봉하고,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장정이 가족과 조직의 위기를 동시에 겪으면서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그러나 결국 힘 때문에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나는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작품을 좋아한다. '가오'잡고, 괜히 어깨에 '힘 주는' 사람,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텅 비어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툭툭 건들이고 쑤셔서 그들이 가진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작품을 좋아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홍 감독은 특히 '남자' '지식인'이 이중성과 허위의식을 잘 드러내는데 보고 있으면 섬찟섬찟 하면서 은근히 켕기게 만든다. '남자충동' 역시 '남성성'과 '가오'에 목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하고 허황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홍 감독의 영화가 예리한 칼로 슬쩍슬쩍 껍질을 까보이는 거라면 '남자충동'은 정공법으로 나간다. 허위의 껍질이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스스로 균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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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