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문화2009. 1. 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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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감독 김용화 (2006 / 한국)
출연 김아중, 주진모, 성동일,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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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미녀는 괴로워'는 추녀가 미녀가 된 뒤의 이야기다. 전신 성형수술을 통해 미녀가 된 추녀는 주위 사람들의 미녀 대접에 기뻐하면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추녀일 때의 습관들이 튀어나오고, '아냐, 나는 미녀라고. 이런 대우는 당연하거야'라고 스스로를 다그쳐보지만 추녀 기질은 어쩔 수 없다. 외면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달리 내면은 여전히 추녀인 여자의 포복절도 코미디다.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라는 측면에서 만화 '미녀는 괴로워'는 만화 '타로 이야기' 와 비견될 수 있다. 만화 '타로 이야기'는 성적 우수, 스포츠 만능, 외모 뷰티풀한 최타로가 주인공이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가난. 10원짜리 하나에 벌벌 떨고 학교에서 남은 급식빵으로 저녁을 먹는,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을 잔뜩 받아 1년치 간식을 마련하는 주인공이다. 타로는 겉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어느 나라 왕자님 혹은 대부호의 아들로 오해받지만 실상은 이처럼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서 경제관념 제로인(그래서 가정경제에 해라도 안 끼치면 다행인) 부모 님에서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소년가장이다. 만화는 타로의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소재로 삼아, 타로의 지극히 정상적인 가난뱅이적 사고방식과 행동을 굉장히 검소하고 소박한 '부자'의 것으로 오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코미디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의 코미디가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를 스스로 자각하고 외부의 시선에 민감한 추녀의 좌충우돌 대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타로 이야기'의 코미디는 주인공 타로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 뿐인데 주위에서 이를 오해하는 것에서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동명의 만화를 영화화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 는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원작에 근거하나 그 웃음의 전개에서는 오히려 만화 '타로 이야기'의 스타일을 취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웃음의 첫번째 포인트는 타로이야기에서처럼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전반부 추녀일 때 그녀 자신은 별다른 웃음을 제공하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의 갈굼과 반응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고기를 열심히 주워먹으며 주진모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나에게 친구가 "비계 띠고 먹어, 이년아" 라고 하는 게 그 예이다. 추녀일 때의 한나는 외모가 뚱뚱하달 뿐이지 매우 건전한 마음가짐과 따스한 태도를 지닌 매력적인 여성이다. 쉐도우 싱어 주제에 춤을 추다 무대에서 떨어져 콘서트를 망칠 뻔 했다며 아미가 한나를 구박하는 장면에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따라해야 실감나게 노래할 수 있거든요 이라고 받아치는 한나의 모습에서 추녀라는 컴플렉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가 이런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였기에 관객들은 전신성형수술을 통해 완벽한 미녀가 되어버린 한나에게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만일 한나가 원작만화에서처럼 외모에 컴플렉스를 가져 괴로워하다가 성형을 한 것이었다면 성형에 대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켜 논란이 됐을 수 있는데, 한나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이런 거부감을 희석시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인이 된 한나가 '정말 이쁘다'라고 탄식하고, 거리를 걸으며 'I'm a beautiful girl'을 외칠 때에도 그래그래, 너 이뻐, 참 이뻐 라며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타로 이야기와 차별화된 전략 하나를 더 선보인다. 그것은 바로 한나의 성장드라마이다. 한나는 순진무구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시련을 겪으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저버린다(아버지의 부정).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 솔직히 고백하고(성형사실 고백 + 아버지의 긍정) 내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타로 이야기가 끝까지 일관된 컨셉 하나로 달려가는데 반해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성장 드라마를 추가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성형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부드럽게 가공하는 솜씨를 보인다.

  이런 성장 드라마의 틀 속에서 성형이라는 목표 달성의 수단은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보이는 비정한 신분상승의 욕망이 아니라 아직 철없는 아이의 몸부림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내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기제로 인식된다. 앞서 살펴본 한나의 밝고 순수한 캐릭터와 함께 이 성장 드라마라는 틀은 성형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고, 외모지상주의 영화로 보여지는 함정을 교묘히 빠져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볼 때 감독  김용화 의 능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전작 '오, 브라더스'에서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형제, 조로증에 걸린 동생, 남 뒷조사나 하며 살아가는 형, 이들을 위협하는 조폭 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소재를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휴먼 코미디로 버무려내는 솜씨를 보인 바 있다. 그런 감독이었기에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도 까다로운 요리재료를 맛깔나는 요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립적인 두 사람의 티격태격 코미디에 강점을 가진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처럼 자신만의 코미디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가고 있는 김용화 감독의 다음 작품에 기대가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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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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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지컬 컨페션은 정통 뮤지컬 계열에 속한다. 무대는 소극장이고, 등장 인물도 몇 명 안 됐지만, 스토리 라인/발성/노래 등은 대형뮤지컬에 걸맞는 스타일을 갖추었다. 그러고보니 렌트도 등장 인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

  스토리는 이러하다.

  rail road 카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이야기. 어디에나 있을법한 삼각연애 스토리... 는 살짝 아니다. 보통의 삼각연애는 라이벌 간의 사랑쟁탈전과 가운데 낀 사람의 고뇌 같은 것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뮤지컬 컨페션에서는 그런 모습 보이지 않는다. 서로 예쁘게 사랑하고 있는 한 커플이 있고, 그 커플의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애절하고 슬프다. 원래의 커플의 사랑만 가지고도 하나의 괜찮은 러브스토리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한 여자가 추가되면서 얘기는 보다 풍성해지고, 애틋한 감정은 더해간다.

  #2

  배우 얘기를 해보자.

  남자주인공은 정성화가 맡았다. 개그맨 출신이다.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연기를 하더니만 어느샌가 개그맨은 관두고 연기 혹은 뮤지컬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그맨 출신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소극장이어서 바로 앞에서 연기를 볼 수 있고,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정성화 꽤 괜찮다. 압도하는 카리스마 스타일은 아니지만 부드럽게 극중 캐릭터 이주현의 모습을 구현해낸다.

  윤공주는 바라만 봐야 하는 가수지망생 역할을 맡았다. 드라큘라에서 '로레인' 역할을 맡았었다. 드라큘라를 보고 온 h의 증언에 의하면 여주인공보다 조연인 윤공주가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그녀 괜찮다.

  정성화와 커플로 나오는 최우리는 꽤 이쁘다. 극중배역이 유명한 가수라 그런지 이쁘고 노래도 잘한다. 개인적으로는 윤공주보다 최우리의 발성과 노래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뻐서 후하게 평가한 것 아니다.

  #3

 따뜻하고 부드러운 뮤지컬이다. 폭발적이거나 흥겨운 맛은 좀 약하지만, 이 겨울 따뜻한 마음을 품고 싶은 사람에게 적격인 뮤지컬이다. '아이 러브 유'가 소개팅 애프터 용으로 최고의 뮤지컬이라면 '컨페션'은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짝사랑의 대상인 사람을 초대해서 같이 보러 가기에 좋은 뮤지컬이다. 자신의 마음을 슬쩍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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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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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감독 변혁 (2004 / 한국)
출연 한석규, 이은주, 성현아,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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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규는 자신만만한 남자다. 자신의 삶과 일 모두를 자신의 생각대로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걸 즐기고 있다. 유능한 형사반장이며, 현모양처형의 아내가 있고, 게다가 섹스 파트너로서의 불륜 상대도 있다. 아내에게도 충실하고, 바람피는 사람에게도 충실하며, 일도 잘하는 거의 슈퍼맨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반성하거나 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세상에 서 있는 이 남자. 적어도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 남자.

그러나 그의 생각은 헛된 것이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고 있으며, 그 삶이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이 남자. 한 순간에 무너져버린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이 자신만만한 남자가 한 순간 무너져버린다. 그가 딛고 있던 땅이 허상이었음을 아는 순간 그는 절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아리아의 한 대목이 절망의 표현으로 바뀌어버릴 때 우리는 이 남자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평화, 평화(아리아의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 앞서 한석규가 부른 '평화'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수컷의 외침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평화다.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어찌 평화가 아니겠는가. 후자의 평화. 그것은 평화롭지 못한 자. 평화라고 믿었던 것으로부터 배반당한 혹은 자승자박에 빠진 남자가 부르는 평화다. 절망의 평화는 그렇게 좁은 트렁크 속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한 번 무너져버린 수컷은, 욕망은 비겁해진다.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이 수컷은 금새 단지 생존만을 목표로 하는 동물이 되어버린다. 아기가 되어버린다. 죽고 싶은 그 순간에 수컷은 죽음을 직시하지 못하고 바둥거리며, 스스로 죽을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한석규가 이은주가 죽으려는 것을 말리는 것은, 생명의 고귀함, 사랑과 같은 추상적 이유가 아니다. 그 좁은 공간에 자기 혼자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투정일 뿐이다. 그래서 한석규는 나중에 트렁크에 나와서도 죽으려는 액션만 취할 뿐 정작 죽음에는 이르지 못한다. 다름 사람들이 그를 붙잡지 않았더라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 수컷이 얼마나 나약하고 어린 존재였는지를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죽음을 바로 앞까지 보고서도 죽지 못한 수컷은 이제 이은주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며 스스로 살 길을 찾는다. 그건 욕망의 끝에서 허공을 보게 된 수컷이 마지막 남은 생존의식으로 어떻게든 자기 숨을 곳을 찾아가는 불쌍함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욕망만은 남아있던 골룸은 그래도 행복했다. 추구할 욕망이 있었으니까. 욕망마저 잃어버린, 욕망의 끝을 봐버린 한석규는 골룸보다 불쌍하다.

수컷이 상징하는 것은 여러가지다. 폭력, 욕망, 질주 등등. 그것이 충족될 때 수컷은 행복하다, 평안하다. 하지만 수컷의 욕망은 얼마나 단순하며, 그 욕망의 성취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수컷의 욕망은 결국 다른 욕망들로 짜여진 거미줄 위에서 놀아나는 하루살이 같은 것이었다. 하루를 영원으로 생각하는 하루살이가, 그 하루마저도 온전히 보내지 못하고 거미줄에 싸여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트렁크는 단순히 짐을 넣어두는 공간이 아니라 욕망으로 불살랐던 삶이 끝을 맺는 공간이 된다.

그렇다고 하여 한석규의 수컷으로서의 욕망과 이은주, 엄지원의 욕망이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후자 둘의 욕망 또한 수컷의 욕망일 따름이다. 생물학적이 아니라 은유적인 의미로서의 수컷. 그 둘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한 남자를 교묘한 끈으로 얽어매고 그것을 이용한다. 남자의 욕망을 받아주는 척하며 결국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이 둘은 그래서 불쌍하다. 이은주는 유일한 희망인 아이를 잃고, 그것 때문에 받아들이려 했던 죽음을 거부하며 발광한다. 엄지원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애를 지우며, 어떻게든 그 사랑을 이어가려 하였으나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아야만 한다. 빗나간 욕망을 가진 세 사람은 그렇게 파국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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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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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 (2001 / 한국)
출연 이영애, 유지태, 이문식,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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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대사 하나로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은수의 변화에 상우가 남기는 이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말 하나면 '봄날은 간다'의 모두 주제와 스토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말이 나오는 장면은 위에 쓴대로 상우가 갑자기 마음이 돌아서버린 은수한테 말하는 씬이다. 이렇게 보면 이 대사는 영화속에서 '은수'한테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사가 쓰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은수한테 상우가 차갑게 대하는 장면에서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은수의 변신에 당황하던 상우도 어느덧 '사랑이 변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대사는 영화 속 남녀주인공, 상우와 은수의 상황과 감정을 정확히 찝어낸 핵심적 대사이다. 소설로 치면 주제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에 공감하고,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랑때문에 아파하거나 절망해본 적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봐서는 이게 뭔 싱거운 소린지 모를거다. 내가 영화보러 갔을 때 내 옆에 있던 커플은 상당한 닭살커플이었는데 - 팔걸이 올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거의 안겨서 계속 뭐라고 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 그들은 결코 이 영화의 맛을 못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영화의 맛을 알기에는 그들 주위엔 사랑의 감정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막 실연당한 사람이 이 영화 보면 딱이다. 무지 공감하며 그래, 바로 저거야 라고 할거다.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났어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괜찮다. 다만 만약 당신 주위에 이제 막 실연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절대 이 영화 같이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랬다가는 그 엄청난 감정의 파고를 당신이 다 감당해야 한다. 밤새 술마셔야 할거고, 이유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그를 감당해야 할거다.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명제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에 사랑은 단 한 번 뿐이며,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라고 목놓아 외치던 때가 있었다. 영화 속 상우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부르짖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명제를 참이라고 생각한다. 일생을 두고 하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영화속에서나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한다. 결국은 정으로 사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현실을 배워가는 것을 우린 '성장'이라고 부른다. '아픈 사랑을 하면 큰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그렇게 난 한 순간에 훌쩍 커버렸고, 이제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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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문화2009. 1. 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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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감독 이준익 (2007 / 한국)
출연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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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에 쓴 글

이준익 감독은 5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키드캅,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그리고 즐거운 인생이다. 이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것은 왕의 남자고,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내서 탄탄한 팬층이 있었던 것은 라디오 스타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2편 보았는데 이 두 편은 아니다. 흔히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2편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본 두 편은 황산벌과 즐거운 인생이다. 키드캅은 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고,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많이 벗어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4편만 놓고 보자면 나는 마이너한 2편만 본 셈이다.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정보는 충분했지만, 결국은 황산벌 1편만 믿고 즐거운 인생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즐거운 인생은 즐거운 영화였다. 유쾌하게 아무런 부담없이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 라고 쓰고 보니 아무 생각없는 킬링 타임용 영화같군요. 표현능력의 부족 때문이겠죠.  생각없는 웃음이 터져나오지는 않지만, 보고 나면 웃게 되는 그런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젊은 시절 밴드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삶에 치인 중년이 되어버린 아저씨들이 다시 모여 밴드를 한다. 이런 스토리 라인은 흔하디 흔한 것이고, 그 전개와 결말도 쉽게 예상가능하다. 그런데 재밌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갈 줄을 뻔히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물을 계속 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준익 감독은 그걸 해냈고, 그래서 재밌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누구나 뻔히 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일이다. 감동적인 김치찌게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걸 잘하는 사람이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연애라는 뻔한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서 내놓는다. 이준익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내놓는데 감동적이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이 김치찌게에 라면사리도 넣고, 육수국물도 새로 내고 해서 퓨전화된 김치찌게로 승부한다면 이준익은 옛날 방식 그대로 담뿍담뿍 끓인 김치찌게로 손님을 모으는 거다.

  이준익이라는 감독의 마력은 여기서 나온다. 비슷한 소재로 만든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뻔한 설정이라는 혹평을 받을 때 '즐거운 인생'은 뻔한 설정으로 칭찬받은 것은 뻔한 것을 뻔하게 요리해서 맛있게 내놓는 이준익의 마력 때문이다.

  '황산벌'도 그랬다. 백제의 마지막 전투. 계백의 비장함이 흐르는 그 전투는 우리가 얼마나 잘 아는 전쟁인가. 자기 자식을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자기 가족을 죽여버리고 싸우는 그 전쟁을 버무려 떡 하니 우리 앞에 내놓은 게 황산벌이었다. 싸우고 싸우다 결국은 백제군이 패할 거라는 걸 알고 보는 영화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란 '거시기'로 인해 혼란이 생겼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게다가 '거시기'로 하는 말장난은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재밌었다.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 익숙한 결말로 달려가는데 재밌었다.

  김치 넣고 돼지고기 몇 점 넣고, 양념 적당히 집어넣고 푹 끓여 내놓은 김치찌게. 먹고 나서도 속이 개운하고 편안한 김치찌게. 그게 이준익 감독의 영화이고, 이 감독의 차기작품 '님은 먼 곳에'를 기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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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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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UTS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SHINOBU KAITANI (대원씨아이(주),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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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추 

 여기 한 야구선수가 있다. 동네야구 아니 내기야구선수다.

  그가 던져서 상대가 치는 내기다.

  그가 아웃을 잡으면 돈을 벌고

  상대가 치면 상대가 돈을 번다.

  이 단순한 규칙.

 

  

#2 장르

 야구 만화를 빙자한 심리대결만화다.

 야구를 몰라도 볼 수 있다.

 치밀한 두뇌싸움 특히 인간심리의 허점을 이용한 두뇌싸움에 관심있는 사람이 좋아할 만화다.

 우리의 주인공 토야.

 그는 시속 100km도 안되는 느린 볼 하나로 돈을 번다.

 동네 야구에서도 안 먹히는 느린 볼로 내기를 이긴다.

 그런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데뷔한다.

  이번에는 짠돌이 구단주와의 내기다.

  그는 아웃을 잡는만큼 돈을 벌고

  점수를 내주는 만큼 돈을 잃는다.

  프로야구 선수들을 상대로 시속 100km의 볼과 시속 무한대의 머리회전을 가진 그가

  어떻게 승리해나갈 것인지.

  짠돌이 구단주의 온갖 음모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게 이 만화다.

 

 #3 good for

  시시한 머리싸움은 가라.

  탁월한 심리 게임이여 와라.

  

#4 bad for

  그냥 열혈야구만화를 원하면 '그래 하자'로 가시길~~

  야구빙자 연애만화를 원하면 'H2'로 가시길

  피구왕 통키의 야구버젼이 궁금하면 '바람의 마운드'로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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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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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7(소장판)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ADACHI MITSURU (대원씨아이(주),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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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찌 미쯔루는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일본 만화가 중에서는 이 사람과 '아기와 나'를 그린 마리모 라가와를 좋아하죠. 그 외에도 여럿 있겠지만 일단 이 둘입니다.

미쯔루의 만화에 대해서는 반응이 크게 엇갈립니다. 열광하는 사람과 밋밋하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 맛보면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쉽게 빠져들지도 않습니다.

미쯔루의 만화는 여백의 미와 슬쩍 발을 빼는 유머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제가 아는 한 형은 컷분할이 가장 뛰어난 만화가라는 평을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장면전환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잘 살립니다. 여백을 적절히 활용해서 아무 의미없어보이는 장면들을 삽입하곤 하는데 그게 오히려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약간씩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바다를 본 적 있나요? 이 만화가 그래요. 특별한 감정의 기복같은 거 별로 없습니다. 어찌보면 단조로운 감정의 흐름에 있어 이런 장면분할과 컷 구성은 감정을 계속 곰씹게 만듭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 맛이 도는 밥알처럼요.

미쯔루 특유의 유머도 한 번 재미들이면 허무개그 비슷무리한건데 이게 참 감질맛나죠. 슬쩍 발을 빼고 시치미 뚝 떼는 미쯔루의 유머. 좋습니다.

이런 유머는 주인공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을겁니다. 미쯔루 만화의 주인공은 열혈청년이 아닙니다. 뛰어난 능력이 분명 있지만(고등학생이 150km짜리 직구를 던집니다. @.@) 목숨걸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스포츠 만화라면 청춘희 끓는 피가 난무하겠지만 이 만화 결코 그렇지않습니다. 주인공 거의 흥분안합니다. 여자친구(?)가 이상한 바람둥이에게 걸려 위기에 빠졌을 때도 우리의 주인공 히로는 화 한 번 내지 않습니다. 150km짜리 직구로 그녀를 위기에서 구할뿐이죠. 나쁜 놈에게 날리는 분노의 주먹 이런 거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라면 굉장히 자극적이고 아드네날린이 마구 분비되어야 할 이런 사건에서조차도(명색이 성폭행 사건 아닌가요?) 너무나 담담하게 넘어가기 때문에 '뭔 일 있었나?' 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인생관은 간단하죠. '야구는 즐겨야한다'입니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매사에 그렇지요. 뭔가를 위해 달려가긴 하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걸 즐기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인생을 달관한듯한 주인공. 매력적입니다.

미쯔루 만화가 대체로 그렇지만 이 H2 역시 야구를 소재로 하지만 야구만화가 아닙니다. 야구를 몰라도 보는데 아무 지장없습니다. 물론 다른 미쯔루 만화와는 달리 야구가 퍽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합니다. '러프'같은 작품에서는 수영과 다이빙이 소재인데 수영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딱 두 씬 뿐입니다. 그게 무척 중요한 장면이기는 하지만요. 미쯔루는 항상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XX 스포츠 만화다'라고 강조하는 대사나 그림이 꼭 등장시키지만 정작 스포츠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가 되버립니다. 다만 야구 만큼은 꽤 잘 활용합니다. 미쯔루가 야구를 무지 좋아한다는군요.

미쯔루의 여러 작품 중에서 제가 최고롤 꼽는 것이 바로 이 'H2'입니다. 앞서 언급한 미쯔루의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죠. 그럼 최악의 작품은? '미소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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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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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페이크 32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HOSONO FUJIHIKO (서울문화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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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만화는 '갤러리 페이크'입니다. 갤러리 페이크는 만화 속 주인공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이름입니다. 여기는 진품이 아니라 복제품을 취급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도난된 미술품이나 밀수품등을 - 물론 진품 - 고가로 파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미술계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미술품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진품/가짜 의 구별이 중요한 분야입니다. 어떤 사람의 진품이냐 여부가 그 작품의 가치를 결정짓죠.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가짜라면 몇 푼 나가지 않습니다. 진품 여부를 둘러싼 갈등과 논쟁이 첨예한 곳이 바로 미술계입니다. 끊임없는 위작 시비가 달아오르죠. 갤러리 페이크는 복제품 전문 화랑을 통해 이런 미술계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만화에는 정말 많은 미술품이 등장합니다. 피카소, 로뎅, 르느와르 등 익숙한 작품에서부터 일본의 풍속화나 자기 등 조금은 낯선 작품들까지 가득 나옵니다. 시계, 보석, 화석 등 언뜻 생각하기에 미술품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것들도 나옵니다. 갤러리 페이크는 수집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루 포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미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의 세계를 포장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술품을 둘러싼 숱한 일화들, 예술 상식,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만화입니다. 왠만한 미술 입문서보다 더 낫다고 봅니다. 미술에 별 관심없더라도 없던 관심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꼭 한 번 보세요.

 다만 만화로서의 질에 있어서는 기대에 못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만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어떤 소재를 잡아서 거기에 얽힌 얘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에피소드에서 잡은 소재에 대해서는 재미나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성을 취하는 만화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을 갤러리 페이크도 가지고 있습니다. 소재에 집중하다가 인물의 형상화와 스토리 전개에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인물들은 생명력이 약합니다. 생생히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나기 어렵답니다. 각 소재마다 등장하는 무수한 조연들은 제외하더라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지타와 사라의 캐릭터 형성에도 실패했습니다. 이런 만화는 본래 캐릭터 만화가 아니고 소재 중심 만화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또 스토리도 호흡이 너무 빠릅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굉장히 짤막짤막한데 그 짧은 길이에 많은 얘기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러면 보기가 좀 버겁죠. 스토리도 치밀한 기승전결을 따르기보다는 단조로운 편이라서 여러 권을 계속해서 보게 되면 질릴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흥미로운 소재를 풀어내는데 있어 미숙한 면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술이라는 소재를 잡은 만화로서 갤러리 페이크는 일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단 갤러리 페이크는 차분하게 봐야할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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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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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는 달리기 만화다. 야구만화, 농구만화는 많이 봤어도 달리기 만화 본 사람 별로 없을거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일정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만화에서 스포츠는 단골소재이다. 우리가 손에 땀을 쥐며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은 그 자체의 박진감과 흥미진진함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 본래의 특성에 더해 인물들 사이의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버무릴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감동과 재미를 안겨줄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만화는 소재라는 측면에서 기본 점수는 확보하고 들어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작품이 쏟아지기는 한다. 그 스포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얼치기 지식만 가지고 어거지로 우겨넣으려다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나라 스포츠 만화 중에서 일정 이상의 성취를 보인 만화는 별로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헝그리 베스트 5.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저런 걸 영화로까지 만들었으니 안타깝다. 

 스포츠는 규칙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가 그 스포츠의 규칙을 모른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야구만화나 축구만화가 성행하는 것은 그래도 일반인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가 처음 일본에서 연재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농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연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스포츠만화가 자주 등장하면서도 걸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은 흔하지 않은 까닭이다.

 널리 알려진 스포츠를 소재로 삼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달리기라니? 무모한 도전이다. 스포츠가 재밌는 이유가 뭔가? 그건 역전의 감동이 있고, 투혼이 있고,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는 우리를 흥분시킬 수 있다.

 그런데 달리기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마라톤 중계나 100m 경기 중계를 볼 때도 그런 흥분을 느낄 수 있을까? 100m는 어, 어 하는 사이에 끝나버린다. 마라톤도 막판 3km 정도만 관심있게 지켜본다. 심한 사람은 스테디움에 들어선 뒤에만 본다. 달리기는 과정을 즐기기에 적합한 스포츠가 아니다. 이건 달리기가 기본적으로 기록경기이기 때문이다. 1초를 줄이는 노력은 당사자에겐 멋진 일일 수 있지만 관객에겐 그리 재밌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타트'는 달리기를 소재로 멋진 작품이 되었다. 여기에서의 달리기는 '역전 경주'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 하는데, 마라톤을 릴레이로 달린다고 보면 된다. 어깨띠를 걸고, 각 선수가 3-7km 정도의 구간을 달린 후 다음 주자에게 어깨띠를 넘긴다. 7명의 선수가 뛰며 최종 주자의 도착으로 승부를 가린다. 각 구간의 길이와 상태에 따른 선수의 배치가 승부의 관건이다. 달리기라 하면 혼자 열심히 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전 경주'는 개인간의 기록경기인 달리기를 단체경기로 바꿔버린다. 각 선수간의 승리에 대한 집념. 이 구간만큼은 내가 책임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주자에게 어깨띠를 넘긴다는 투혼 등이 빛나는 단체경기가 바로 역전 경주이다. 이런 단체경기적 성격이 있기에 역전경주는 작전과 역전의 맛을 제공할 수 있다. 에이스가 한 명 있다해도 나머지 6명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으며, 선수의 특성에 따른 배치가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우승할 수 없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서 '스타트'의 감동과 재미가 나온다.

만화는 31권 내내 달린다. 주야장창 쉬지않고 달린다. 한 번의 역전경주를 가지고 3-4권은 우습게 쓴다. 달린다는 것에는 특별히 멋진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데, 비슷비슷한 그림을 가지고 31권을 채운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안겨준다. 신기한 일이다. 달리기만 하는데, 과정과 결말도 뻔히 보이는데,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중간에 누군가는 투혼을 불사를 것이며, 또 누군가는 우연한 사고로 쓰러질 것이며, 결국에는 주인공이 필사의 달리기로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이 뻔한데도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등장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달리기 때문일거다. 그 필사적인 노력이 가슴에 와닿아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도 필사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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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문화2009. 1. 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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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키다리 아저씨들 중 일부는 동성애자이며,그것도 주요배역들은 거의 다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나름의 가족을 형성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들은 성이 다르다는 것만 제외하곤 일반적인 가족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들도 비동성애자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생활한다. 오히려 이 만화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는 일반적 가정은 약간 붕괴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동성애자 가정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만화를 읽다보면 과연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저 남들 보기에 정상적인 것 같은 가족보다는 남들이 보기엔 이상해보일지 모르지만 그들 스스로 서로를 진정한 가족구성원으로 대하는 쪽이 더 참된 가정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즉 가족의 참모습은 외형적인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들 구성원 간의 유대와 사랑에 좌우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이건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해보아도 알 수 있다. 제아무리 번지르르한 집일지라도 그들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가정은 곧 지옥과 다른 바 없지만 비록 홀어머니나 홀아버지 밑에서 컸다 하더라도 혹은 가난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된다.

이 말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일상적인 깨달음을 우리는 동성애 가정에게는 쉽게 적용하지 못한다. 가족의 가치가 외형적인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면 왜 우리는 '남자인 아빠와 여자인 엄마'로 구성된 가족만을 진정한 가족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아빠나 엄마 둘 중 한 명이 없는 가정'을 결손가정으로 몰아가며 그런 집에서 큰 아이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거라고, 그래서 비뚤어진 아이일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으면서 왜 우리는 '동성의 아빠와 엄마'로 구성된 가족은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남자 엄마는 여자만이 가지는 모성을 자식에게 줄 수 없고, 여자 아빠는 남자만이 가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그 말은 편모, 편부 가정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편모, 편부 가정은 모성과 부성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어 있으니 가족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면(그럴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우린 가족의 의미를 구성원의 '性'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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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