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기/물건너2009. 6. 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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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쥬익 언덕에서 내려와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향했다. 시간은 서울이었으면 해가 지고 있을 6시 경이지만 바르셀로나는 8시는 되어야 해가 좀 질락말락하니까 아직은 해가 쨍쨍하다. 낮의 뜨거웠던 햇살이 조금은 수그러들어 그래도 좀 걸어다닐만한 햇볕이다. 날은 걷기에 좋아졌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고 하루종일 걸어다닌 터라 배가 고팠다.

 

저녁은 'lonely planet, spain'에서 본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결정했다. 항구도시라 해산물이 맛있다는데 여기서 먹은 해산물이라고는 첫 날 저녁에 먹은 빠에야에 올라온 해산물과 따로 시킨 새우구이가 전부였다. 숙소 바로 앞인데다 맛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간 이 곳은 람블라 거리 한 가운데 있는 음식점이야말로 관광객 상대로 단련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맛과 서비스를 보여줬다. 우리나라나 스페인이나 관광객 노리는 식당은 맛이 없고 비싸다. 피곤한 몸에도 그리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turkey를 여행할 때 lonely planet 추천 숙소와 음식점의 위력을 실감한 아내의 제안에 따라 오늘 저녁은 론리 추천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문제는 길 찾기였다. 람블라 거리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이 식당은 주위에 지표로 삼을만한 곳도 없었다. 영어로 쓰인 지도를 의지해 이리저리 헤매기를 수십 분. 해안가에 있는 식당이니 바다로 가야 하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 식당을 찾고야 말았다.

 

그리고 역시나 론리의 추천에 따라 음식을 주문했다. 모듬 해산물 볶음(스페인어로 하자면 mixed.... 뭐시기). 거기에 상그리아 까바를 시켰다. 샹그리아는 와인에 과일 등을 넣어 만든 술로, 스페인에서는 물처럼 마신다는 맛난 술이다. 스페인에서 뭐 먹을 때마다 꼬박꼬박 '샹그리아 우노'(샹그리아 한 잔 주세요!)를 외치게 만드는 달달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자랑한다. 어떤 와인에 어떤 과일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그래서 한 번도 같은 맛을 마셔본 적이 없는 샹그리아. 스페인에서 먹은 샹그리아 중 가장 맛있었던 게 이 곳의 '샹그리아 까바'였다.




 

cava. 뭔지도 모르고 특이한 게 뒤에 붙어 있길래 시켰더니 황금빛을 띈 술이 보틀로 나왔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cava는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이란다. 여기에 과일 등을 넣어 만든 게 샹그리아 카바. 맛있었다.

 

모듬 해산물 볶음은 새우와 홍합과 오징어(?)를 올리브 오일에 볶은 단순한 음식이었다.




사진에서 보듯 푸짐하게 큰 접시로 나와서 람블라 거리 식당의 야박한 상술에 눈물 흘린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맛? 요리는 역시 재료라는 '미스터 초밥왕'에서 본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말 재료를 그저 볶았을 뿐, 그 외의 어떤 조리법이 더 있을거라 생각되지 않는 이 단순한 요리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이 날의 식사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는데, 토마토 소스를 바른 구운 빵(스페인에서는 식전 빵도 돈을 받는다. 이건 안 시켜도 나오는데, 나중에 왜 돈 받냐고 따지지 말길. 걔네 원래 그렇다)도 그저 빵을 구워서 토마토 소스 좀 발랐을 뿐인데 그 심플한 맛이 괜찮았고, 통고구마 구이도 좋았다.





 

그리고 람블라 거리까지 30분 정도를 걸었다. 여행지의 밤거리를 걷는 걸 좋아하는데, 분주하고 화려하던 낮을 벗어나 밤의 거리를 걸으면 내가 여행을 왔구나. 이 곳의 공기는 서울과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준다. 걷다보니 바르셀로나의 대표 맛집으로 꼽히는 7 portes가 보였다. 여기는 바르셀로나 책자 어디를 봐도 맛있고 친절한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명성 만큼이나 엄청난 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 긴 줄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맛있는 거 먹고 왔는데~~ 룰루~~'하게 만든 맛있는 스페인의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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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나다니기/물건너2009. 4. 1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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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중심가다.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북적여서 람블라 거리에 숙소가 있으면 잠자기 힘들 정도다.

아침의 람블라는 좀 다르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 4월에 7-8시 무렵에는 아직 문 연 상점도 별로 없고 고즈넉한 람블라를 즐길 수 있다. 바르셀로나 투어 버스가 운행하는 9시는 되어야 활기가 조금씩 살아난다.

람블라 거리에서 아침을 먹으려면 어디가 좋을까. 호텔이나 민박에서 먹을 수도 있고, 아침에 문 여는 식당도 여럿 되니 먹기야 좋다. 우리는 산 호세 시장 안에 있는 작은 식당을 선택했다.

산 호세 시장은 람블라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보케리아 시장(Mercat Bpqueria)라고도 하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활기차고 오밀조밀 가게들이 많아서 구경하기 좋다. ‘마싯따’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어서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본 과일과 채소들은 어찌나 크고 색깔이 또렷한지, 모형 같다.

람블라 거리에서 산 호세 시장 입구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쭉 가면 시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조그만 식당이 하나 있다. 식당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바 형태로 된 곳에 앉아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시장 사람들이 잠깐씩 와서 먹고 마시고 하는 듯한 곳이다.

관광객으로 많은 곳보다는 현지인들이 먹는 곳에서 먹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아침을 이 곳에서 먹었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간단한 영어로 주문한 음식은 ‘스패니쉬 오믈렛’이라 불리는 tortilla - 감자를 갈아서 계란이랑 뭐랑 해서 두껍게 부쳐낸 음식. 담백하고 은근히 든든하다 -, 바게트 샌드위치인 bocadillo - 바게트 빵을 길게 반 잘라서 안에 이런 저런 재료를 넣어 먹는 샌드위치 - 이다.



아내 몫으로 시킨 또르띠야는 아침 빈 속에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좋아서 이후 스페인 여행 동안 즐겨 먹은 음식이 되었다. 내가 시킨 보카디요에는 하몽을 넣어 달라고 했다.

스페인 가면 꼭 먹어보겠다고 생각했던 음식이 하몽이다. 하몽은 돼지다리햄이라 번역되는데 그냥 햄이라고 하기에는 날 것의 맛이 강해서 햄과 생돼지고기의 중간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비릿한 맛이 좀 있어서 못 먹는 사람들은 입만 대고 만다는데 스페인에서는 이런저런 요리와 술안주로 많이 쓰이는 국민음식이다. 좀 큰 식당에 가면 넓적한 돼지다리를 벽에 걸어두었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즉석에서 얇게 저며 내놓는다. 벽에 쭉 늘어져 있는 돼지다리가 장관인데 이걸 고정시키고 저미기 위한 전용 틀도 있다.

처음 시도한 하몽은 전혀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우린 하몽 체질인 듯. 나중에 스페인을 떠날 때 슈퍼에서 하몽을 사다가 한국 와서 맛있게 먹기도 했다.

마실 것으로는 커피와 콜라를 시켰다. 콜라에 레몬 한 조각 주더라. 이러고 먹고 있는데 조그만 가게에 사람들이 계속 들락날락했다. 주인아저씨와 반갑게 인사하면서 커피 한 잔씩 시켜 먹거나 빵 한 조각씩 먹고 가는 사람들. 왠 동양인들이 저기 앉아 있나 하는 표정으로 잠깐 보다가, 금새 신경끄고 자기들끼리 먹고 떠들다 사라졌다.

관광객들은 오지 않는 조그만 식당에서 먹은 스페인에서의 첫 아침.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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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