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2014. 9. 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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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다. 왠만한 사람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도 밀리지 않을만큼 책을 읽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는 능력이 생겼다고 여겼다. 바로 옆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빌려볼 수 있게 된 뒤에는 그 능력에 만족했다. 일단 여러 권을 빌리고 몇 페이지 쓱 읽어보는 것만으로 좋은 책을 가려낼 수 있다고. 이 많은 책 중에서 좋은 책만 가려서 읽게 되었다고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의심이 들었다. 이거 내가 정말 좋은 책을 골라내고 있는건가. 내가 고른 책이 정말 괜찮은 책인거야? 매년 best책을 선정해서 공표하는 것은 그런 의심을 타파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내가 꼽은 책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면서, 내 안목을 검증하려 한 것이다.

 

그 해의 best 책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어라, 내가 왜 이런 책을 best로 꼽았지 라고 할 때가 있다. 뭐, 독서는 책과 나의 대화이니, 달라진 내가 예전의 책에 똑같은 감정을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다. 그 순간 그 사랑이, 그 독서가 그 당시의 내게 best였으면 족한 것이다.

 

문제는 꼽아놓은 책들의 스펙트럼이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쉬운 책, 소설 같은 것의 비중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조금이라도 어려운 책은, 이 책 잘 못 썼구만 하고 던져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 독해력이 미치지 못한 것인지, 책이 잘못 쓰여진 것인지.

 

이것은 독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에 내 행동을 가만가만 반추해보면 내 시야, 내 마음의 스펙트럼이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8년차 직장인이 되니, 그 직장인의 시야에 함몰되고 있음을 느낀다. 자기변명적이고, 조직수호적인 껍질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버럭 하고, 내 기준에 맡지 않으면 저건 잘못된거야 하고 던져버리는 일들 말이다.

 

계급장 떼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내가 추락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껍질을 깨야한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 하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상황에 나를 던져넣고. 특히나 내가 가진 특권이 먹히지 않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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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