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책들2009. 1. 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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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신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양귀자 (살림,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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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 님의 '부엌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 드리려고 산 책인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은 간단합니다. 음식에 대해 아는거 없고, 사업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글쓴이가 겹쳐지는 우연을 따라 식당을 열고 자신의 생각에 맞는 식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라는게 만만치 않습니다. 전혀 음식점 경영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생판 초보가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어가며 '한 끼 밥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라는 모토를 가지고, 그 생각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집스레 걸어가는 모습이 담담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구체적 내용을 말해버리면 재미없어질 책이니까 직접 읽어보는 게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말할 수 있는 건 하나의 이상을 가지고 그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모습이 참 예뻐보인다는 것입니다. 거친 세파와 수익에의 유혹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입니다.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 그 꿈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고 조용한 감동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책 디자인이나 편집 등도 상당히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한 끼 밥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노력하는 과정이 책 내용이라면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책 디자인입니다. 자주빛에 가까운 붉은 바탕에 은색으로 쓴 제목이 있는 표지도 그렇지만 책 안을 보면 글쓴이의 생각과 책 내용을 드러내기 위해 참 애썼다는 느낌이 절로 들게됩니다.

 이런 식의 창업에 관한 얘기들은 대체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거나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담고 고객을 끌어들이려 하는데 이 책은 담담하게, 정말 담담하게 일기쓰듯이 그렇게 하나의 식탁(식당이라는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하는 글쓴이의 뜻에 따라)이 만들어지고 우여곡절을 겪고 자리잡아가는 모습, 잠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이 태어나는 모습들을 그런 과정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창업성공기 류의 책을 찾는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이 좋을겁니다. 책 표지만 봐서는 이 책이 식탁의 성장에 관한 것인지 알 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꿈을 가지고 살아가려 하는 사람, 장인정신이라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고 싶다면, 그런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지금 펴보세요. 당신에게 우직하지만 정직한 일 얘기를 들려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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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1.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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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나다니엘 필브릭 (중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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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다니엘 필브릭이 쓴 '바다 한가운데서'는 2000년 NYT선정 논픽션 최우수상을 수상한 책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감명깊은 책으로 꼽았다고 합니다(여기에 대해 혹자는 부시의 의견은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 책의 외관은 이렇습니다. 언뜻 보기에 꽤나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만, 모든게 그렇듯이 자기가 직접 보고 그렇게 느끼지 않는 이상, 이 책의 외관적 평가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책을 본 뒤에 제가 느낀건, 9000원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과 간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하면 이번 해에 읽은 책 best3 안에 들지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어디까지나 '잘하면'이므로, 이후로 좋은 책을 읽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지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책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 책의 소재인 한 포경선 에식스호의 침몰은 실제로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포경선 에식스호는 고래잡이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낸터컷에서 1819년 출항하여 고래를 잡다가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배가 침몰하고 맙니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험난한 약90일간의 표류가 시작됩니다. 거대한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20명의 선원들은 세 개의 작은보트로 나뉘어서 하루에 약500kcal-남자 성인의 필요한 하루 에너지 섭취량은 약 2500kcal이며, 여자의 경우 약 2000kcal입니다-의 건빵과 물 한잔으로 생활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는 식량부족으로 인하여 더 줄이게 됩니다. 표류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한 보트에서 다른 사람이 살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그를 죽여서 잡아먹습니다.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리더쉽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 주죠. 식량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적에는 사람이 죽어도 바다에 수장시켰던 이들이, 식량이 부족해지자 사람이 죽으면 으레껏 그들의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또, 20명의 선원은 각각 7명(리더: 폴라드선장), 6명(리더:오웬 체이스-1등항해사), 7명(리더: 조이-사망->핸드릭스)으로 나뉘어 3보트에 탑승하게 되는데, 어느 보트에 탔는가에 따라 표류 상황과 생존자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약간은 우유부단하고 너그러운 리더였던 폴라드의 보트에서는 나중에 식량이 부족해 제비뽑기를 통해 사람을 잡아먹는 사태까지 갔으며, 지나가던 배에 우연히 구조되었을 때에도 이들은 동료의 뼈에서 나오는 골수를 빨아먹기에 여념이 없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습니다. 반면 엄격하면서도 끊임없이 동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리더인 체이스의 보트는 구조되기 전날까지 건빵이 남아있었고, 죽은 동료의 고기를 먹었을 뿐입니다. 또 멀리서 배를 보고 구조를 요청하는 적극성을 보였구요. 병치레를 하던 조이의 보트는 조이가 식량단속을 하지 못하면서 가장 먼저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생존자 수 역시 각 보트가 차이를 보이는데 선장의 보트는 7명중 2명이, 체이스의 보트에서는 6명중 3명이 살아납니다. 핸드릭스의 보트는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습니다. 다만 두시 섬에서 네 개의 유골을 실은 보트가 도착했는데, 이 보트를 이들로 추정할 뿐입니다. 나머지 생존자 3명은 무인도에 남았던 자들입니다. 표류 도중 세 보트는 각각 헤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핸드릭스의 보트역시 폴라드의 보트와 같은 과정, 즉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다가 제비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서 음식으로 사용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한 명이 남아 그 역시 바다 한 가운데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섬찟하더군요. 이처럼 각각의 보트에서는 공통적으로 기아 상태에 직면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일률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습니다. 각 보트가 맞은 결말의 차이는 운명의 차이라기보다는 각 리더의 리더쉽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글이 너무 많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나봅니다. 몇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작가에 따라 나름대로의 각색과 해석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책 역시 약간의 과장이 섞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필브릭은 생존자들의 일기와 그들의 저서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해 나갔습니다. 먼저,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작가에 따라 나름대로의 각색과 해석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책 역시 약간의 과장이 섞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필브릭은 생존자들의 일기와 그들의 저서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해 나갔습니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에식스호 선원들과 같이 극한 상황에 쳐했던 다른 사건의 경우와, 극한 생황에서의 인간 행태에 대한 각종 조사자료를 함께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끝내야겠는데요,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바다 한가운데서'를 읽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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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1. 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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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전10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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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건너 한강으로. 그래서 한강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의 전작인 태백산맥, 아리랑과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다.

태백산맥은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독자에게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책이다.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말이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민주주의에 대해 설파하고 싶은 작가의 욕심은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쉽게 드러난다. 그 용어의 과잉과 사상의 내림 앞에서 소설적 재미는 상당히 감소되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빨치산 얘기를 드러낸다는 것, 사회주의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목숨걸고 하는 짓이었고, 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우리 사회에는 없었다. 따라서 작가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땅고르기부터 시작해야 했고, 태백산맥의 현학성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리랑은 그에 반해 구수한 옛날 얘기를 하는 것마냥 쉽게쉽게 읽힌다. 일제시대 얘기를 쓴다는 것,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한 얘기를 쓴다는 것은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일일터이고, 그건 독자들에게나 작가에게나 신명나는 일일 것이다. 소설적 재미는 아리랑이 가장 뛰어나다고 느끼는 것도 일제시대에 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은 두 작품의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한강에서는 아리랑처럼 이야기보따리를 마냥 풀어놓는 식으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지난 수십년의 현대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런 현대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면서 작가에게는 무척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서 작가가 이 사회에 던지는 외침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한참 소설에 빠져들다가도 이런 외침이 나오는 부분에서 한번쯤 발길이 멈쳐지게 된다. 한강이 읽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사를 다루는 소설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고, 단순한 서술만으로는 짚어낼 수 없는 부분들이기에 작가가 굳이 개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문열 평역 삼국지처럼 난데없는 끼어듬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서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있기는 하나 읽다보면 작가 조정래가 이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다.

한강은 왜 우리 사회가 지금 이런 모습인지, 왜 이런 아픔과 모순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고 대답인 것이다. 그래서 한강에서는 현실문제를 짚어나가는 사회학 논문적인 면과 사람들이 생활을 그려내는 소설적인 면이 공존한다. 군데군데 보이는 사회문제에 대한 비평은 이 소설을 그저 심심풀이 읽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폐부를 들쑤시는 죽비로 남게 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 아픔 중 주요한 것은 친일 청산, 지역감정, 독재의 폐해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는 이유, 답답하게 돌아가는 이유를 작가는 이 세 가지에서 찾는다. 이 세 가지는 제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면서 이 사회의 아픔을 만들어내고 그걸 더욱 가중시킨다. 이 세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두루두루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이 소설 하나만 읽어도 따로 현대사 공부가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지난 수십년간의 주요 사건들이 교묘하게 엮여져있고, 이를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소설판이다. 분명 지난 시절 우리 삶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기억 저 편으로 가리워진 일들을 소설은 휼륭히 복원해내고 우리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만든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진짜 언론탄압이 무엇이었으며, 지금 목소리 높이는 자들이 그때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DJ 정권 들어 지역차별 인사가 판을 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지역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승만이 이 나라의 국부라며 칭송하는 자들에게 이승만이 왜 물러나야 했으며 이 사회에 끼친 해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위 박정희 신드롬, 박정희 향수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아직까지도 유효한지 등을 알기 쉽게 동시에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아픔, 모순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이 놈의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울분이 쌓이게 된다. 작가 스스로도 그걸 느꼈음인지 작가는 군데군데 희망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삽입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사회병폐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되는 부정적 인물을 그릴 때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지만,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인물을 그릴 때는 현실의 인물을 쓴다는 것이다. 대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가상의 인물도 있지만 작가는 그 외에도 현실의 인물을 몇 명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태일'과 '김진홍' 목사가 있다. 게다가 작가는 이들의 삶을 보여줄 때는 소설적 창작을 가미하지 않고, 그들의 자선전이나 전기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며,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도 그들은 상당히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마치 영화에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하는 것처럼. 이는 희망이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처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현실의 모순에 절망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희망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현실의 인물을 쓰면 그런 희망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작가로서는 혼탁한 세상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처럼 글을 씀으로써 그에 대한 예우를 다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한강을 읽어내려가는 밤은 행복했다. 없는 돈 털어서 몇몇에게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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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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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전12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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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 중 일제시대를 다룬 소설. 민족의 아픔은 이 땅에서, 하와이에서, 중국에서 그렇게 삭혀졌다


태백산맥 (전10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정래 (해냄출판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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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중 좌우 대립기를 다룬 소설. 민족의 분열과 슬픔을 그렸다. 이적소설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잊혀졌던 그리고 감추어졌던 과거를 드러낸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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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1. 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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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을 없게 하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호 (프로네시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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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등의 영향으로 법의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을 줄로 안다. 얼마 전에 방송된 ''조선과학수사대 - 별순검''을 재밌게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위한 책이 나왔다.

무원록 이다. 말 그대로 ''원통함을 없게 하는 책''이다. 조선시대 법의학 수사 지침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웅진에서(정확히 말하면 웅진의 하위출판브랜드에서) ''원통함을 없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책은 각 죽음 별로 서술되어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 불에 타 죽은 시체, 칼에 찔린 시체 등. 각 죽음별로 그 사유로 죽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요령, 다른 것으로 위장하려고 하는 것을 파헤치는 방법 등이 나와있다. 불에 타 죽은 것인지, 죽인 다음에 불에 넣은 것인지 하는 식이다. 꽤 자세하며 타당한 구석이 있어 머리를 끄덕이게 만드는 면이 있다.

우리 법의학의 가장 큰 특징 - 현대 법의학과 비교하여 - 은 부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SI를 보면 그들은 일단 시체를 확보해서 그걸 부검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부검은 엄격히 금하던 일. 드라마 허준에서 보았듯 시신 부검은 은밀하게만 행해졌다.

시체를 부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죽음의 원인을 밝힐 것인가, 특히 위장된 죽음의 진실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

우리 법의학은 시체에 겉으로 드러난 흔적을 중시한다. 어디에 어떤 자국이 있으면, 어디가 어떤 색을 띠고 있으면 이건 XX때문에 죽은 거라는 식이다. 그것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게 나름 수백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검증방법이기 때문이다. 원래 무원록은 중국에서 쓰던 것을 우리 나라에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바꾼거다. 추상적인 서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면서 끊임없이 보완된 경험의 산물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면 서양법의학, 근현대 과학에 경도된 까닭일 것이다. 귀납법에 의해 쌓이고 쌓인 데이터를 압축해 놓은 휼륭한 법의학 책이다.

예를 들어 시체가 물에서 발견된 경우, 살아서 물에 빠진 것인지, 죽은 다음에 물에 빠진 것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CSI라면 시체를 부검하여 폐를 검사할 것이다. 폐에 기포가 있다면 생전에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호흡하는 과정에서 물이 폐에 들어갔을테니까.

무원록에서는 백골이 된 시체의 두개골에 정수리 부근에 물을 부으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코를 통해 모래나 흙같은 게 나오면 살아서 물에 빠진 거라고 본다. 역시 호흡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코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

ps.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이 책만 읽지말고 서양법의학 책을 놓고 같이 읽으면 더욱 재밌다. 그 차이와 같음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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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