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책들2009. 7. 3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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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만세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마크 스틸 (바람구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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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역사는 딱딱하다. 연대가 나오고 간단한 설명 몇 줄과 평가가 좀 따르고,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한 페이지를 넘기 힘들다.

 실제 역사는 뜨겁다. 사람이 산 기록이 역사일진대 후대에까지 기억되는 사건이라면 뜨거운 사람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교과서로만 역사를 접한 사람은 역사의 뜨거움을 모른다. 의미없는 연대 외우기로만 역사를 생각한다. 6월항쟁도 100년쯤 뒤에는 "자. 87년 6월. 이걸 외우란 말이야. 너희한테 몇 일까지 외우라고는 안해. 그래도 6월이라는 것은 알아야겠지. 6월 항쟁이잖아." 이렇게 역사 시간에 한 줄로 요약되고 있을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팔딱거리는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사건을 풀어풀어 그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줄 책이다. 혁명만세다.

 이 책 시종일관 낄낄거리면서 읽게 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영국식 유머가 일품이다. 그의 유머는 낄낄거림에만 그치지 않는다. 날선 풍자는 프랑스 혁명을 비꼬는 척하면서 현실을 뒤집어버린다. 그 적나라한 말투란 사람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공포정치로 기억되는 로베스 피에르, 독살당한 한 장의 그림이 떠오른 마라의 인간적인 모습도 알 수 있다. 
 
 책에서 아쉬운 것은 하나뿐이다. 풍자와 비꼼은 원본을 정확히 알 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비꼬는 대상을 몰라서야 웃을 수 없다. 문제는 그거다. 내가 프랑스혁명을 잘 모른다는 것. 그러다보니 저자의 농담이 어디까지 농담이고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종횡무지 슥슥 베어대는 그의 글솜씨 때문에 이런 혼동은 더 커진다.

 그럼 결국 이 책의 결점은 나의 결점이다. 건조하게 자세히 프랑스혁명을 다룬 책을 한 권 더 읽어서 고쳐야 할 약점이다. 풍자를 뺀 혁명만세가 한 권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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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7. 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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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는 클래식 음악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까칠한 천재 치아키와 괴짜천재 노다메가 그려내는 좌충우돌 소동극이 매력이다. 그러나 만화라는 매체다보니 노다메의 재기 넘치는 피아노 연주와 치아키 선배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를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이게 뭐 평소에 자주 듣던 음악도 아니고, 대강 이름만 좀 알 것 같은 클래식 음악이라 상상도 쉽지 않다.

노다메 칸타빌레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TOMOKO NINOMIYA (대원씨아이(주),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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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버젼 '노다메 칸타빌레'가 나왔을 때 열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상상만 했던 음악이 현실에서 영상으로 구현되었다는 데 있었다. S 오케스트라의 멋진 퍼모먼스를 음악과 함께 볼 수 있는 즐거움 말이다.

그만큼 음악을 소개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도판을 활용할 수 있는 미술은 좀 낫다. 들어야 하는 음악이라 그렇다.

그렇게 어려운 음악글을 제대로 쓴 책이 나왔다. 분야는 클래식 음악보다 더 낯선 라틴 음악이다. 라틴음악이라.... 살사라 쌈빠, 탱고 정도 밖에 모르겠는데. 리듬이 아니라 리오 카니발에서 화려한 의상으로 춤추는 무희가 떠오르니 난감한 분야다.


라틴 소울 - 10점
박창학 지음/바다출판사



'라틴 소울'은 귀에도 익숙치 않은 라틴 음악을 눈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발음도 어려운 라틴 음악 연주자의 이름을 '대강 이런 느낌으로 읽으면 되는거지, 꼭 정해진 발음 법칙은 없는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가르쳐주는 친절함도 있고, 개인의 취향과 호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소개도 있다.

이 모든 글은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 조용조용히 라틴음악을 소개하는 것처럼 쓰여져 있다. 라디오도 하고, 방송도 하고, 글도 쓰는 저자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다. 낯선 것을 접하는데 친절한 가이드만큼 고맙고 필요한 존재는 없을 터. '라틴소울'의 박창학은 딱 맞는 가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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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장르문학2009. 7. 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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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비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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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된 일이다. 친구와 함께 비디오방에 갔다가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하나 골랐다. 남자끼리 시간이나 때울까 해서 간 것이라 대강 고른 영화가 정말 재밌었다. 개봉작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유명한 배우도 아닌 것 같은데 몰입하게 하는 영화였다.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재밌는 오락영화, '네고시에이터'였다. (그 때는 케빈 스페이시와 사무엘 잭슨이 와닿지 않았었다)

 '네고시에이터'는 인질극이다.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과 협상만으로 이를 구출해내려 하는 협상가의 대결을 다룬 영화다. 인질하면, 특공대 투입해서 우당탕탕 때려잡는 것만 생각나는데 한 발 한 발 조금씩 잽을 주고받으며 인질을 구출해내는 협상의 묘미를 깨닫게 해준 영화다.

 그런 인질협상의 맛을 다시 느끼기는 어려웠다. 인질극은 그 자체로 긴장감 주는 데는 최고의 재료이지만, 손질하기가 까다롭다. 어느 정도 긴장감을 몰아넣기는 좋다. 범인이 인질을 잡고 있고,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걸 어떻게 풀건데. 무조건 인질이 죽어나간다고 해서 긴장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잖나. 그리고 결국 인질이 풀려나야 할텐데,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말이 되게, 해피엔딩으로 끌고 가는 건 여간 애먹이는 게 아니다.

 그런 성취를 이룬 작품이 '소녀의 무덤'이다. 농아학교의 학생과 교사를 태운 버스가 탈옥수들에게 탈취된다. 그들이 인질을 끌고 향한 곳은 폐 도축장. FBI의 협상 전문가 아더와 그의 팀이 투입되지만 탈옥수 루 헨디 등 일당은 만만치 않다. 타고난 잔인함이 수차례의 범죄를 통해 벼리어져 백전용사가 된 루는 정확한 타이밍에 날카로운 칼을 찔러대고, 수많은 경험으로 인질협상을 꿰뚫고 있는 아더는 그 칼날에 치명상을 입지 않으려 슬쩍슬쩍 피하며 응수한다. 

 언제든 인질을 죽일 수는 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죽여야 함을 아는 루 헨디
 모든 인질을 구하면 좋겠지만, 인질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함을 아는 아더

 두 고수의 숨막히는 공방이 빚어내는 심리전, 한 순간의 안심도 허용치 않는 청룡열차 같은 스토리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드라마틱한 구성까지. 인질협상극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좋은 스릴러가 담아야 할 장점을 두루 갖춘 멋진 인질스릴러.

소녀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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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장르문학2009. 6. 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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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효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요코야마 히데오 (노블마인,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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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당황했다. '제3의 시효'가 재밌다고 해서 집어들었는데 첫 장에서 얘기가 끝났다. 어라? 두 번째 장의 제목이 '제3의 시효'였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한데. 장 제목이 책 제목일 리는 없잖아? 단편집이었다.

단편집인 줄도 모르고 재밌다고 해서 읽게 된 소설 '제3의 시효'는 사전정보 없이 재밌다는 말만 믿고 우직하게 읽은 보람이 있었다. 재밌다.

재밌는데 그 재미가 유쾌하거나 짜릿하거나 하는 재미는 아니다. 이건 생생한 수사드라마다. 형사들의 땀이 녹아있는 진실된 사건일지다. 살인의 추억을 생각하면 될거다. 사건이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인 형사들이 관할에서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 고뇌하고, 아파하며, 분노하는 형사들이 날선 기지로, 예리한 시각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다.

형사들의 땀만 배어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 하나하나에 숨은 진실은 교묘하고, 그걸 밝혀내는 형사의 수법은 더욱 교묘하다. 단편이라 복잡한 수법은 아니나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기지와 반전이 수려하다.

대표작 제3의 시효는 공소시효를 활용한 트릭이다. 공소시효는 어떤 죄를 벌할 수 있는 유효기간 같은 것. 그 기간 이후에는 죄가 있어도 벌할 수 없는 제도다. 이를 악용해서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버티며 숨어다니는 범죄자가 있다.

그런 범죄자를 정의의 법정으로 낚아채려는 형사의 트릭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겹겹이 쳐진 교묘한 그물로 범죄자를 유혹하는데...

두껍지 않은 책에 짤막한 단편이 이어진다. F현을 배경으로 형사들의 경쟁과 갈등, 사나이의 정을 그린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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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6.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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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흥미로운 스포츠이다. 뛰고 던지고 하니 스포츠가 맞기는 한데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특징이 여럿 있다. 야구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플레이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간격을 두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쉼없이 인플레이 상태가 계속되는 축구나 농구와 달리 야구는 공 하나하나마다 쉼이 있고, 공격팀은 타자나 주자를 제외하고는 아예 앉아있으며 수비팀은 투수와 포수는 좀 바쁠지 몰라도 다른 야수들은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 때문이다(수비 포메이션에 따른 이동과 주자 견제를 위한 움직임 같은 것들은 일단 논외로 하자).

순간적으로 뛰고 치고 하는 일은 있어도 대부분 가만히 있는 게 일이니 배나오고 뒤뚱거리는 몸을 가진 선수가 버젓이 에이스요 4번 타자가 될 수 있는 게 야구다. 계속해서 뛰어다니는 축구나 농구에서는 이런 선수는 후보에도 들지 못한다.

 


 
그 외에도 제멋대로인 야구장의 모습, 세세한 것까지 정리된 복잡한 규칙, 수많은 작전, 개개의 플레이들이 통계로 정리될 수 있는 점 등 야구의 특징은 한 둘이 아니다.

 


 
야구는 왜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되었을까? 야구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야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야구의 이런 특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특징은 야구를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가?


 

 야구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다면 이 책 '야구란 무엇인가'를 추천한다. 전설적인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수십년 동안 여러 번에 걸쳐서 고쳐 쓴 이 책은 야구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만큼 충실한 내용과 날카로운 식견으로 야구의 깊은 매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타격, 피칭, 수비 등 야구의 기초가 되는 각 분야에서부터 감독, 심판원, 스카우트, 구단주 등 야구로 먹고사는 야구인을 거쳐, 통계, 미디어 등 야구의 외적인 부분을 지나, 장래의 야구상까지 야구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야구란 무엇인가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레너드 코페트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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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페이지짜리 책은 읽기도 전에 겁부터 나게 만들지만, '야구란 무엇인가'를 읽다보면 600페이지는 야구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충분치는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아쉬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이 재밌고도 충실한 이야기를 좀 더 읽었으면 하는 것이지, 그 내용이 부실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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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5. 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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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요즘 뜨는 여행지다. 파리, 런던 중심의 서유럽과 저렴하고 때묻지 않은 동유럽 여행이 지나가고 이베리아 반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파리, 런던은 너무 많이 갔고, 동유럽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매력은 여러가지다. 햇볕이 좋은 날씨, 정열적이고 쾌활한 사람들, 이슬람 문화가 섞인 독특한 풍경 그리고 가우디다. 천재 예술가 가우디. 부드러운 곡선과 타일 등, 언제 어디서 보아도 가우디스럽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끝에 있는 콜럼버스의 탑

가우디 한 명이 온 도시를 먹여살린다는 곳이 바르셀로나다. 유럽의 3대 관광지로 불리는 이 곳은 가우디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다른 일로 왔더라도 가우디 작품 하나는 꼭 보고 가게 된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그 밖에도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박물관, 미로 박물관 등의 박물관과 올림픽으로 유명한 몬주익 언덕, 세계 최강의 축구팀 바르셀로나 FC, 멋진 해변 등이 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여행을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을 위해 바르셀로나 여행책 4권을 소개한다. 순서대로 보면 좋을 듯.

 

1.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  이상은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이상은 (지식채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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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는 좋은 여행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세계테마기행이라는 다큐멘터리는 한 나라씩을 소개하는 시리즈물이다. 스페인은 가수 이상은이 맡았다. 그가 스페인을 거닐었던 기록이 이 책이다. 다큐멘터리의 영상을 책으로 옮긴 것은 아니므로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이 이 책을 봐도 좋고, 안 보고 봐도 좋다. 이건 이상은 개인의 기록이다.

바르셀로나에 한정된 책은 아니지만,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소개한 책이므로 가장 먼저 집어들기 좋다. 사진이 많아 스페인의 풍경을 미리 느끼고, 저자의 걸음걸이를 따라가면서 서서히 스페인에 물들어가게 하는 책이다.

  hola는 스페인 인사다. 어디서고 '올라' 한 마디를 하며 싱긋 웃으면 따뜻하게 맞아준다.

2.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오영욱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오영욱 (예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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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때려치우고 훌쩍 바르셀로나로 건축공부하러 간 ‘오기사’의 책이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책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쓴 책이라 바르셀로나를 느끼기에 좋다. 그의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데, 그림에 글이 덧붙여진 형태라 보기도 좋고 받아들이기도 좋다.

바르셀로나의 숨은 장소, 현지인처럼 바르셀로나를 느끼고 싶을 때 보면 적합한 책이다. 책 말미에는 저자가 즐겨가는 식당과 카페 등의 짤막한 소개가 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면서 여행을 위한 기어로 변속하는 것은 어떨까?



3.I LOVE BARCELONA


아이 러브 바르셀로나 스페인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지영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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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를 제대로 파헤치는 ‘I LOVE ~' 시리즈의 바르셀로나 편. 바르셀로나에 대한 온갖 정보가 짤막짤막하게 가득 들어있다. 이 책 한 권이면 몰라서 못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

그러나 너무 정보가 많아서 신중한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일정을 짤 때 참고사전 식으로 쓰면 좋을 것.

 

4.LONELY PLANET, SPAIN

 

Spain, 7/e
카테고리 여행
지은이 Simonis, Damien (LonelyPlanet,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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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 플래닛은 오랜 시간 검증된 책이다. 소문만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직접 체험해보고 좋은 것만 뽑아서 만든 책이라 신뢰가 간다. 여기서 추천하는 숙박지나 음식점은 몇 개 안되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위의 I LOVE BARCELONA를 참고로 삼고 이 책을 기둥으로 삼으면 적절한 조화가 될 듯. 한글판보다는 영문판이 좀 더 낫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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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장르문학2009. 5. 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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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10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좋은 법정 스릴러는 드물다. 그건 태생적 한계다. 좋은 스릴러도 드문데 법정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조건이 추가되면 걸려드는 게 줄어든다. 모집단이라도 크면 모르겠지만 스릴러 장르는 큰 시장이 아니다.

 스릴러는 긴장을 주는 장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를 주는 장르다. 히히덕거리며 웃는 재미가 아니라 조였다 풀었다 하는 재미다. 이게 쉽지 않다. 팽팽항 긴장을 유지한 채 몰입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에 법정이 추가되면, 와우, 법정이라는 게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된 공간에서 말빨로만 충돌하는데, 어려운 법용어까지 들어가니 능수능란하게 쥐었다 놓았다 하기에 좋지 않다. 좋은 법정스릴러가 되려면 사전에 포석을 잘 깔아두었다가 법정에서 그것이 단계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선보이면서 결론으로 치달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법정스릴러로 흔히 분류되는 존 그리샴은 좋은 스릴러일지는 몰라도(이것도 의문이 좀 가지만) 좋은 법정스릴러는 아니다. 변호사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활약하는 이야기지 법정에서의 공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표작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를 보자.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존 그리샴 베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존 그리샴 (시공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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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변호사가 좋은 조건의 로펌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범죄집단의 하수인 격이었고, 입막음당한 채 평생 불안에 떨며 부를 누릴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이러 저러한 활약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다. 어디에 법정이 나오냐고. 존 그리샴 소설은 영화로 만들기는 좋지만 법정스릴러는 아니다.

 그런 희귀하고도 어려운 장르인 법정 스릴러에 모처럼 좋은 소설 하나가 번역되었다. 마이클 코넬리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보기 드물게 법정에서의 공방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한다.

 그건 철저한 사전포석으로 법정공방에서의 대사 하나하나가 빛을 발하게 만든 정교한 구조 덕분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만 보이던 사건들이 알고 보니 법정 공방을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건들이고, 주인공이 맡았었고, 맡고 있는 사건들이 교모하게 씨줄 날줄로 엮어 드라마틱한 반전의 결말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소설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최고급 링컨 차를 굴리는 이 변호사는 제도와 법의 허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 줄 아는 유능하지만 타락한 변호사다. 돈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돈 안주면 변호를 그만두겠다고 클라이언트를 을러대는 그의 모습은 정의감에 불타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보다 친숙하고 매력적이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정의의 사자도 아니다.

 그런 변호사가 위기에 빠져 진퇴양난에 처한 절명의 순간에 역으로 함정을 깔고 이중삼중의 지략으로 멋지게 탈출하는 것이 이 소설이다. 타락한 변호사가 정의에 눈을 떠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도덕교과서가 아니라,  타락하고 현실적인 변호사가 타락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반전의 법정스릴러라는 점에서 재미와 만족감을 준다.

 한달음에 소설을 읽고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 : 자살노트를 쓰는 살인자'를 집어들었다. 저 매력적인 변호사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이 작가라면 누가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포만감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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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4. 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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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소설가다. 일본과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인 하루키는 젊어서부터 시작한 달리기를 좋아한다. 틈만 나면 뛰고, 시간 내서 뛰고, 어디서고 뛴다.

 

 소설에서는 이런 뜀박질 매니아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에세이에서는 종종 보인다. 소설가 하루키가 무슨 에세이냐고? 하루키는 잡지에 꾸준히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에세이를 소설만큼이나 열심히 쓰는 게 하루키다. 담백하지만 은은한 맛이 우러나오는 그런 에세이를 말이다.

 

 하루키의 인기에 힘입어 하루키의 에세이도 여럿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어느 것을 집어도 후회하지 않겠지만, 이국에서 소소히 녹아드는 이방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먼 북소리’를 권한다. 그리스의 한 섬에서 몇 달을 머물고, 이탈리아를 자동차로 여행하며 담담하게 여정을 그려나간 책이다.


 

먼 북소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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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북소리’에도 달리는 하루키의 모습이 펼쳐진다. 70년대의 유럽은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운동삼아 뛰는 것을 이해 못하는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열심히 뛰고 있는 하루키에게 힘빼지 말고 우조(전통술)나 한 잔 하고 가라는 마을 주민과의 일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달리는 하루키에 관심이 갔다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볼 것. 이 책은 달리는 소설가 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스케치한 자화상이다.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달리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달리면서 깨달은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같은 이야기들이 그의 달리기 행적을 따라 풀어진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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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스스로도 달리기를 축으로 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 했다는 에세이니 만큼 인간 하루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준다. 하루키라는 사람을 잘 모르거나 하루키에 관심 없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심정으로 손에 들어도 좋은 책이다.

 

 읽다 보면 달린다는 것은 운동을 넘어서 깨달아가는 과정이며, 결국은 인생길을 가는 우리의 모습이 runner임을 알게 된다. 두 발로 달린다는 것은 직립보행을 선택한 인간의 숙명이자 축복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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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장르문학2009. 4. 1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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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뒷표지에 있는 수준의 스포일러만 있음 *

 

 

노인의 전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존 스칼지 (샘터,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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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인의 전쟁’ 은 흥미로운 설정을 던지는 작품이다. SF라는 게 흥미로운 설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좌우되는 일이 많은 장르다 보니, 일단 흥미로운 설정을 했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어떤 설정인가?

이 시대에는 우주개척방위군이라는 게 있다. 우주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군.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서 점령하는 군이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인간보다는 고등한 외계생명체와 최전선에서 맞붙는 군이다.

그런데 우주방위군에는 75세의 노인만 입대할 수 있다. 그것도 사망신고서에 서명해야만. 즉 법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고 우주로 날아가서 신병이 되는 것이다.

왜 하필 75세 노인일까? 노인을 데려다가 군에서 뭘 시키려는 걸까? 전직 군인이라면 모를까, 군과 관계없던 사람을 데려다가 뭘 할 수 있을까? 뒷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은하의 저편에서, 늙은 우리는 인간 병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처럼 75세 홀애비가 인간병기가 되기까지의 과정, 된 이후의 활약이 ‘노인의 전쟁’의 내용이다.

 

글의 재미는 어떠한가?

재밌다.

75세 노인이라고 하면 인간사 쓴 맛, 단 맛을 다 본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같이 우주로 가기로 했던 아내가 죽고, 마지막 모험을 위해 우주로 떠나는 75세 노인이다. 미련이 있겠나, 고민이 있겠나. 그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삶을 즐긴다. 그래서 소설 전반에 유머가 흐른다. 시니컬한 유머가 아니라 툭툭 재치있게 치고 빠지는 유머라서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유머가 넘치는 SF라는 점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유사한데, ‘은하수 ~~’ 가 시니컬한 영국식 유머와 온갖 대중문화를 비트는 매력이라면 ‘노인의 전쟁’은 따스하면서도 재치있는 매력이다.

 

더 기쁜 것은 이 소설이 시리즈의 1권이라는 것이다. 후편들은 아직 번역이 안됐지만, 이 매력적인 주인공을 더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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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3. 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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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 플러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스티븐 레빗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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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은 경제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물가지수, 경제성장률, 복잡한 경제수학 등등 우리가 경제학이라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런 경제학에 대해 쓰고 있는 책이 아니다. 내년도 경제전망이 어떠할 것인지, 물가가 어떻게 될지 그런 것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괴짜경제학은 경제학에 대한 책이 맞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 개념 '최소 비용 최대 산출'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여주고 이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범상하게 지나치고 마는 현상 배후에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 숨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헌혈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헌혈을 장려하기 위해 헌혈자에게 소액의 현금을 주기로 했다고 치자. 그럼 헌혈이 늘어날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센티브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온다. 인센티브는 어떤 일을 했을 때 거기에 주어지는 댓가를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인센티브가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 인센티브에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도덕적, 사회적, 금전적 인센티브가 그것이다. 도덕적 인센티브는 '착하다, 나쁘다' 와 같은 도덕적 평가를, 사회적 인센티브는 '명예,인기'를, 금전적 인센티브는 '경제적 이익'을 말한다.

헌혈을 장려하기 위해 현금을 주는 것은 금전적 인센티브이다. 그런데 헌혈자가 현금을 받게 되면 예상과 달리 헌혈은 줄어드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헌혈이라는 고귀한 행위,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행위가 돈 몇 푼에 자신의 피를 파는 천박한 짓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행위가 매혈로 전락함으로써 사람들은 헌혈을 꺼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적절한 인센티브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저자는 어떤 행동을 유도하려면 그에 맞는 적절한 종류의 인센티브를 적절한 양만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혈을 장려하려면 그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평가를 높여주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영화관람권을 내걸고 헌혈을 유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인센티브이며, 그보다는 헌혈의 숭고한 의의를 널리 홍보하는 게 좋은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책을 펴는 사람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정책이란 일정한 목표를 향해 사람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일정한 목표로 사람들을 이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주장하고, 논증하는 바다. 적절한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어떤 경우에 어떤 인센티브를 써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정책자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헌혈 홍보정책 담당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영화관람권을 헌혈 미끼로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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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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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댄 애리얼리 (청림출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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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과 유사한 스타일.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어 경제학적으로 현명한 선택 or 현명한 전략은 무엇인가를 고찰한다.
제일 처음 나오는 메뉴 고르기 이야기는 인간의 비교심리를 활용하여 상품판매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보여준다.
괴짜경제학과 중복되는 내용도 일부 있으나, 괴짜경제학과 같이 읽으면 내용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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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