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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18 0.7mm 1
하루하루2018. 7. 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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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공부를 한참 하던 때에는 펜에 민감했다. 줄을 치거나 글을 쓸 때 펜을 쓸 일이 많아서였다. 자기 손에 맞는 필기구가 있어야 공부가 잘된다는 마음으로(공부를 하기 싫다는 실질적인 이유를 숨긴 채) 문구점에서 이 펜 저 펜 써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고시 2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펜이 더욱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써내야하는 시험 특성상 어떤 펜을 가지고 들어가는지는 당락을 가를 수 있다. 적어도 핑계를 찾는 고시생에게는 그러했다. 펜은 무기고, 좋은 무기는 나를 승리로 이끌어줄테니까.

 

내가 썼던 펜은 동아 u-knock 0.5mm였다. 유행하는 펜은 2-3가지 종류였는데 일제 펜이 좀 더 인기있었고, 만년필을 쓰는 소수파도 있었다.

 

동아 유노크 0.5mm는 일단 싸서 좋았다. 그래봐야 500원 남짓이면 펜 한자루고, 펜 하나를 다 쓰려면 적어도 며칠은 걸리기 때문에 얄팍한 고시생의 지갑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비싼 펜을 쓰는 건 개운치가 못했다.

 

그리고 0.5mm가 글을 빠르게 쓰기에는 적합했다. 너무 두껍거나 너무 얇으면 적당한 글쓰기 스피드를 유지할 수 없다고,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만큼 펜에 민감했던 시기가 없었다.

 

취업을 하고 펜을 쓸 일이 드물었다. 다이어리에 지시사항을 메모할 때 말고 펜으로 일하는 업무는 드물었다. 바로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면 썼지, 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펜을 그 때 그 때 적당히 쓰는 게 일이었다.

 

가끔은 멋진 만년필을 사서 가지고 다닐까도 생각해봤지만 서명할 일도 별로 없는데 그건 의미가 없었다. 만년필은 관리도 어렵다.

 

그러던 중 잘쓰던 0.5mm 펜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볼이 잘 안 굴러가는 것 같고, 막 휘갈려 쓰는데 0.5mm로는 선이 부드럽게 잘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0.5mm에 정을 뗄 때인가. 0.7mm 펜을 구했다.

 

좀 더 굵은 펜은 좀 더 부드럽게 써졌다. 날려써도 끊기지 않고 선이 이어졌다. 이제 제한된 분량에 많은 글을 우겨넣어야 하는 시험은 안 쳐도 되니까 0.7mm 펜도 쓸만했다.

 

0.7mm 펜으로 교체한 김에 메모지도 리걸패드로 바꿨다. 이면지를 메모지로 썼는데 어딘지 일을 허접하게 한다는 느낌이 나서다. 내가 실제로 일을 허접하게 할지언정 이미지라도 개선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노란색 리걸패드를 메모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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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