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책들2014. 3. 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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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05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부서를 옮기면서 여름에 공백이 있었던 게 타격이 컸네요. 150권 정도는 읽었어야 하는데.

내년에는 좀 더 집중해서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순위는 무순입니다.
 
 
 
총통각하, 배명훈, 북하우스
 
배명훈은 SF 소설 작가로 분류되지만, 공상과학이라는 의미의 장르소설 작가로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SF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하고는데, 특히 이 소설에서 그런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총통각하'라는 제목부터가 '그 분'을 전제로 이 책이 쓰여졌음을 보여줍니다. '그 분'을 떠올리고 읽으면 소설이 더욱 재밌습니다.
 
소설이 나온 게 2012년 10월입니다. 출간할 때만 해도, 이 모든 일이 한 편의 소설로 남아, 2013년에는 그렇지 않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2013년 12월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이 책의 후속편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왕각하'라는 제목으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문학동네
 
중국 작가 위화의 에세이집입니다. 위화의 소설 '형제'를 좋아하는데요.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도 위트와 풍자를 넣어 당대의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에세이집에서도 그런 위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책이 출판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회를 꿰뚫어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두려운 게 많은 정권은 금지하는 게 많습니다.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노블마인
 
영화 베를린 표절 의혹이 불궈졌던 소설입니다.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이 배경인데, 이 시기는 범죄가 발생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범죄는 타락한 자본주의에서나 있는 것이지, 위대한 사회주의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안된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하지만 범죄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정부는 이를 은폐합니다. 진실의 규명이 아니라 체제의 안전이 우선이 시대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이야기입니다.
 
꽉 막힌 사회 분위기, 끔찍한 범죄 앞에서 무너지는 가정, 이를 지키지 않는 정부, 이 숨막히는 시대상을 작가는 적확하게 그려냅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부부마저도 서로 의심해야 하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시대를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묘사 뿐만 아니라 스릴러 소설로서도 높은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시대에서만 가능한 사건을 그 시대에 맞게 풀어냅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하루키 월드는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다카노 가즈아키는 13계단으로 국내 미스터리 팬들을 확 끌어잡은 적이 있었죠. 그의 최신작(?)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파고들어 갑니다. 인류의 기원, 그리고 신인류의 탄생. 과연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어마거대한 테마를 스릴러 기법으로 한 권으로 깔끔하게 풀어냅니다. 거장의 솜씨죠.
 
싸움은, 전쟁은,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생존본능의 결과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인류가 더 큰 힘에 의해 제노사이드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던지는 묵직한, 그러면서도 재밌는 소설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인물과사상사
 
저자 전성원은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입니다. 기본적으로 글빨이 있는 사람이죠. 그는 현대 인류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에 이르기까지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제품 등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위인전이나 성공기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만든 제품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거창하게 리뷰했지만, 글은 쉽고 재밌습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테드 창, 북스피어
 
과작이라는 점이 유일한 단점인 테드 창의 신작입니다. 그는 인공지능이라는 SF의 오래된 테마를 끄집어 내고, 이를 자본주의와 연결시킵니다.
 
여기 인공지능 상품이 있습니다. 가상 애완동물인 디지언트 라는 제품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사서 훈련시키는데, 인공지능이 장착된 디지언트는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훈련받느냐에 따라 개성을 가지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인공지능 테마인데, 여기서 테드 창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디지언트는 어느 순간부터 잘 팔리지 않고, 회사는 더 이상 업데이트 지원을 거부합니다. 새로운 인공지능 상품이 시장에 출현하고, 디지언트는 버려집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키운 인공지능 애완동물에 애착을 느끼고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시켜 보려 합니다.
 
개성있는 자아를 획득한(혹은 그렇게 보이는) 디지언트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폐기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하나의 지능체로 다루어야 할 것인가, 상품으로 소비하면 그만인가, 업데이트가 없어져 생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디지언트라는 종(?)의 멸종인가? 등등의 철학적인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어렵죠.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얇은 중편 정도이지만,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언젠가 저 문제는 반드시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지승호, 시대의창


올해의 발견은 강신주입니다.  강신주의 저서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 차트에 올라와 있는데 이 책이 강신주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선정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강신주의 사상, 내공, 지향점 등이 잘 드러납니다. 그의 테마는 '인문학'이고 그것은 '홀로서기'로 귀결됩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기 두 발로 버텨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국가와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너 자신에게로 돌아가라는 그의 외침이 의미있게 들립니다.

지승호는 국내에서 제일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전문 인터뷰어라는 개념조차 없는 이 나라에서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인터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면을 섬세하게 터치하는 건 김혜리가 좀 더 낫지만,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지승호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의 경지, 고미야 가즈요시, 다산북스

이 책의 부제는 '당연한 일을 바보처럼 철저히 하라'입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 이 글에 선정된 다른 책들처럼 뛰어나거나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여러 내용이 적혀있지만 압축하면 저 부제문장 하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저는 저 문장 하나로 이 책을 선정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한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대충 때우려고 하고, 그냥저냥 넘어가려 합니다. 하지만 프로라면, 당연한 일을 바보처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승패는 거기에서 갈립니다. 야구선수 양준혁이 위대한 것처럼 보이는 건 그가 세운 기록 때문이지만, 그가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번도 1루까지 걸어서 나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웃당할 것 같은 타구를 날리고도 그는 1루까지 전력질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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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