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대구탕은 맑은 국물이다. 큼지막한 대접에 대구와 무가 들어갔다. 잡것도 없이 뽀얀 국물을 내다니. 또 대구는 얼마나 신선한가. 두툼한 대구살에 붙어있는 껍질까지 맛있었다. 한 마디로 '어제 술 안 마신 게 후회되는 맛'이었다. 이런 대구탕을 멀쩡한 속에 먹어야 한다니... 아침부터 소주를 한 병 시켜 먹고 있는 옆 테이블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나니 땀이 쪽 나고 좋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달맞이길로 갔다. 어제의 일정이 많이 느려졌다. 달맞이길은 언덕을 하나 올라가는 길인데, 바다와 숲이 보이고, 한 쪽으로는 이쁜 건물들이 있는 길이다. 서울로 치면 이태원 + 가로수길 정도의 느낌이랄까. 중간에 사색의 오솔길이라는 산책로가 있어서 그 길로 올라갔더니 신선한 나무공기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이뻤다.
달맞이길 정상(?)에 올라왔길래 내려가려 했는데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김성종 추리문학관. 헉! 저건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가고 싶어했던 추리문학 전문 도서관이 아닌가. 김성종 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인데, 일반인에게는 여명의 누동자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 분이 사재를 털어 만든 도서관이 이 곳에 있었다는 걸 기억 못하고 있었다니. 갔다. 가서 책 읽었다. 두어 시간 만에 일본 추리소설 2권 읽고 왔다. 입관료 5천원을 내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책을 맘껏 볼 수 있다. 신나게 읽었다.
책까지 다 읽고 해운대까지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목표로 했던 촌닭집은 없어졌는지 안 보여서, 시장 입구에서 김밥과 잔치국수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이게 무슨 맛이지? 게를 넣은 것 같은데. 시장에서 파는 잔치국수 국물을 게로 내는.... 이 곳이 부산 해운대다. 개운하게 밥을 먹고, 국제 시장(부산의 유명한 재래 시장)을 보겠다고 출발했다.
자갈치 역에 내려 국제시장을 찾아가는 길에 우리 발걸음은 쇼핑거리로 빠져버렸다. 국제시장 가는 길이 이 쪽인가.... 어, 저기 푸부가 있다. 비니 사러 가자.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계획도 팽개치고 비니를 하나 장만해서 머리에 썼더니 군바리 느낌이 훨씬 덜하다. 만족해하며 용두산 공원 한 번 찍어주고 계획대로 중국집 사해방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는 다시 해운대로 돌아가서 숙소를 잡았다. 이유는 하나. 내일 아침에 금수복국에서 복국을 먹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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