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책들2010. 1. 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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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스티븐 레빗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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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제학을 맛깔나게 풀어낸 수작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지나쳐버릴 수 있는 사건, 현상의 이면에 경제학이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경제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경제학적인 선택을 한다는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때의 깨달음과 감동은 이미 리뷰로 쓴 바 있다.

2009/03/04 - [책] - 괴짜경제학 - 인센티브가 세상을 움직인다

괴짜경제학은 중간에 개정증보판도 한 번 나왔었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고, 경제학을 이런 식으로 비틀어보는 책이 국내에 속속 소개되었다.

경제학 콘서트가 그렇고

경제학 콘서트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팀 하포드 (웅진씽크빅,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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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베스트셀러인 넛지도 괴짜 경제학의 영향 하에 있는 책이다.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리처드 탈러 (리더스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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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나 넛지보다는 괴짜경제학을 더 좋게 읽었기에 이만한 책은 또 없나보다 하고 아쉬워하던 와중에

슈퍼 괴짜경제학이 등장했다.
슈퍼 괴짜경제학 - 10점
스티븐 레빗 지음, 안진환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그리고 당장 읽었다.

그러나 실망이었다.

여전히 재치있는 문장과 사례를 열거하긴 하는데 이게 양만 늘어난 슈퍼같더라는 것이다.

그냥 맥 먹다가 빅맥 먹는 느낌이랄까. 빅맥도 맛있긴 하다만 그냥 맥 먹은 다음에 먹는 빅맥은 양 말고는 메리트가 적단 말이다.

'괴짜경제학'이 "인센티브로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제대로 구현해 냈다면 '슈퍼 괴짜경제학'은 '인센티브의 원리를 가로막는 외부효과'라는 문제의식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해 중구난방의 느낌이 들었다.

 '키타 제노비츠'사건을 예로 들자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목격자가 수십명 있는데도 다들 방관해서 결국 희생자가 죽고야 만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심리학과 사회과학에서 무수히 다루어진 바 있다. 워낙에 유명하고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슈퍼괴짜경제학'에서는 경제학적인 분석보다는 사실 그 사건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부풀려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을 분석하면서 인간의 이타심과 TV의 폭력유발 등에 대해 얘기하긴 하지만 그건 이 사건과는 좀 동떨어져 있어서 키타 제노비츠 사건을 화두로 삼아서 이타심과 희생정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슈퍼 괴짜경제학'은 괴짜경제학의 연장선에서 그 때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뒤에 새롭게 추가된 이야기를 덧붙인, 괴짜경제학을 재밌게 읽었지만 양은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는 팬북같다고 하겠다.

 책소개에서 말하는 '인센티브의 원리를 가로막는 외부효과'라는 문구는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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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12. 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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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올해의 책을 선정했습니다.

 

올해는 돌아보면 장르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무겁고 진지한 책의 비율은 확 줄어들었군요.

 

삶이 힘들었다는 증거일런지.

 

좋은 장르소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100권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빌려보았고, 빌려본 것 중에서

 

좋은 것만 구입해서 책 구입비는 많이 들지 않았군요.

 

 

한 권 한 권 따라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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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김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영하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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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가 여행을 떠났습니다. 떠나고 지나간 기억을 글로 남겼습니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생각나는 여정입니다.

 

 하루키는 그 여행에서 '상실의 시대'를 썼습니다.

 

 김영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남길까요.

 

 아니,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아도 이 책 한 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10. 타워 / 배명훈

 

타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배명훈 (오멜라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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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SF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타워형 도시국가 '빈스토크'를 무대로 정치, 사회, 사랑, 권력, 음모, 전쟁 등 온갖 요소를 버무린 멋진 SF입니다.

 

 설정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설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빈스토크'

 

 멋진 설정을 기가 막히게 풀어내는 스토리.

 

 수평주의자와 수직주의자의 대립을 다룬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편을 강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타클라마칸 배달사고'가 가장 좋습니다.

 

 

 

9.소녀의 무덤 / 제프리 디버

 

소녀의 무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비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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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아인 학생과 교사를 태운 버스가 납치당합니다. 탈주범들은 이들을 인질로 잡고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인질범과 경찰의 치열한 심리대결이 빛나는 인질 스릴러의 수작입니다.

 

 http://largesea.tistory.com/107

 

 

 

8. 노인의 전쟁 / 존 스칼지 / 샘터

 

노인의 전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존 스칼지 (샘터,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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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에 입대했다."

 

 매력적이며 적절한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75의 나이에 입대하는 홀애비라?

 

 아이러니하면서도 호기심을 마구 자극합니다.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펼쳐질 것일까요.

 

 첫문장을 뿌리로 이야기는 술술술 풀려나옵니다. 세상 다 산 노인의 달관한 듯한 유머와 함께 말이죠.

 

 SF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복잡한 과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SF 코믹전쟁멜로물입니다. 

 

http://largesea.tistory.com/81

 

 

7.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 마이클 코넬리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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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돈 밝히는 속물 변호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빛나는 소설입니다.

 

 나쁜 놈이 착해보려다가 더 나쁜 놈이 되어 결국 정의를 구현한다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반전의 묘미가 숨쉬는 치열한 법정드라마도 있습니다.

 

 

http://largesea.tistory.com/89

 

 

6. 나의 서양미술순례 / 서경식 / 창비

 

나의 서양미술 순례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서경식 (창작과비평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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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 책은 말랑말랑하기 쉽습니다. 박물관을 직접 가보고 쓰는 것이라면 좋은 가이드이거나 지식의 자랑이거라, 그냥 잡글이거나 그렇습니다.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다릅니다. 저자의 경험과 고뇌와 사색의 깊이가 무겁습니다.

 

 순례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순례자의 모습, 순교자의 모습이 책에서 아른거립니다.

 

 시대의 아픔은 타국의 그림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깊이 배어나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에 두 형을 감옥에 보내고 그 형들을 구해내기 위해 많은 세월을 보낸 저자의 삶의 무게가

 

 낯선 나라의 그림을 통해 전해집니다.

 

 

 

5.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이야기 세트 (전15권)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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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 완간을 기념해서 연초에 세트를 샀습니다.

 

 완간되면 보려고 10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선생님. 완결에 감사드립니다.

 

 

 

4. '양장본' 드래곤 라자 / 이영도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양장 세트 - 전8권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황금가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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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입니다.

 

 양장본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안녕전화에서 연재될 때 하나하나 캡처해서 두고두고 10번은 읽었습니다.

 

 10년만에 양장본으로 읽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재미가 소복소복입니다.

 

 

 

3.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의 비밀 / 신현만 / 위즈덤 하우스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신현만 (위즈덤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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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생존 노하우를 전합니다.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음모와 줄서기를 권하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된 처세술을 알려줍니다.

 

 지금 이 책이 당신의 직장생활을 3년쯤 길게, 30%쯤 편하게 해줄 것입니다.

 

 

 

 

2. 흑풍도하 / 좌백

흑풍도하. 3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좌백 (로크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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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의 신작이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게다가 무협소설 역사상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히는 '대도오'의 속편입니다.

 

고전무협과 신무협의 경계를 나누는,

 

이 작품이 나온 뒤에야 신무협이 시작되었다는 전설의 소설 '대도오'의 속편입니다.

 

 

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오는대로 사서 읽고 있습니다.

 

 

 

 

1. 심야식당 / 아베 야로 / 미우

심야식당. 4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ABE YARO (미우,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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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책 베스트 1은 만화 '심야식당'입니다.

 

 만화로는 처음 1위에 오른 책이군요.

 

 특별한 것은 없지만 되는 요리는 손님이 원한다면 뭐든 만들어주는 식당 이야기입니다.

 

 문어모양 소시지구이 같은 걸 팔죠.

 

 한 에피소드 당 음식 하나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잔잔하고 따스한 이 만화, 강추입니다.

 

 http://largesea.tistory.com/108

 

 http://largesea.tistory.com/133

 

 

 

책장 한 켠을 올해의 책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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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장르문학2009. 12. 1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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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야쿠마루 가쿠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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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2가지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스릴과 지적 쾌감. 전통적으로는 지적 쾌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초기 추리소설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코넌 도일의 소설을 보면 범인이 누군지를 알아맞추는 것이 포인트였다.

정정당당하게 단서와 복선을 깔고 작가와 독자가 지적 대결을 하는 것이 추리소설이었고, 이를 아예 형식으로 도입하여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앨러리 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리소설은 점점 스릴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되었다. 이는 영화 등 영상매체의 발달과 맞물리는데, 소설도 영화처럼 빠른 전개와 긴장감있는 몰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매력을 고루 갖추어야 현대 추리소설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근래 들어 우리 나라에 소개된 추리소설 중 두 가지 매력을 공히 갖춘 작품으로는 ‘13계단’이 있다.
 
‘13계단’은 사형제도의 모순을 배경으로 깔고 사형집행이 조금씩 다가오는 죄수의 혐의를 벗기기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 지금 파헤치지 못하면 죽는다.  2가지 미덕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설정이고, 소설은 그 성취를 이루었다.

‘천사의 나이프’도 ‘13계단’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먼저 형사법제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13계단이 사형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면, 천사의 나이프는 소년범 제도에 대한 문제인식을 깔고 있다.

이는 소년범을 처벌할 것인지, 교화할 것인지의 관점의 차이이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권 중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년범죄가 점점 흉포해지는 현실에서 소년범 제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를 정면으로 소설 속으로 품은 것이 ‘천사의 나이프’다. 좋은 아이디어다.


아이디어의 구체화는 어떤가. 이는 두 가지 매력을 잘 구현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먼저 스릴. 13계단은 제목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천천히 조금씩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다. 사건을 제 때 해결하지 못하면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것. 한 단계씩 진행되는 죽음의 과정 속에서 진범을 찾아내 사형집행을 막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대단하다.


그러나 ‘천사의 나이프’는 이보다 못하다. 설정은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갈 만하다. 아내를 죽였지만 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던 범인들이 한 명씩 죽거나 위험에 처한다. 당연히 용의자로 몰린 상황.


그러나 주인공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만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코너로 몰리지를 않으니 긴장감이 덜하다. 좋은 설정이지만 살리지를 못했다.


다음 추리. 책의 뒷표지에 나오지만 이 소설에는 3중의 트릭과 반전이 깔려 있다. 게다가 이 트릭과 반전은 작가가 문제적 지점으로 삼은 소년범 제도의 모순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문제의식과 추리의 구성이 잘 맞물려진 경우다.


아쉬움이 있다면 3중의 트릭과 반전이 불과 마지막 몇 페이지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휙휙 반전을 연달아 터트리면서 피날레를 장식하는데 그 효과가 미흡하다. 우와, 그랬던 거야? 라며 탄성이 터지기보다는 그랬던건가... 하는 정도밖에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이는 1차적으로는 드라마틱하게 구성을 끝까지 끌고 가서 터트리는 역량 부족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앞서 말한 추리소설의 공정한 룰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공정한 룰이란 독자가 추리할 수 있을만한 단서를 적절히 제시하는 것. 반전이 탄성을 자아내려면 반전을 알게 된 다음에 다시 앞 부분을 살펴봤을 때 그 때는 미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다시 보니 큰 의미를 가지는 복선과 단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식스 센스’에서 부르스 윌리스가 유령이었음을 알게 된 뒤에 영화를 다시 보면 놓치고 지나간 장면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천사의 나이프에서는 이 점이 부족한데 반전들의 개연성이 떨어져서 시원한 지적 게임의 쾌감을 안겨주지 못한다. 3중의 트릭과 반전을 두고 앞부분을 다시 읽어봐도 이 반전이 꼭 들어맞아서 미처 보지 못한 복선을 발견하는 기쁨을 찾기 어렵다. 반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천사의 나이프’는 ‘13계단’에 비해 5%쯤 부족하다. ‘13계단’의 짜임새와 성취를 온전히 이루어냈으면 하였는데, 문제의식과 구성은 좋았지만 긴장감과 설득력이 부족해서 아쉽다.


정상의 ‘13계단’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럼에도 여타의 일본 추리소설보다는 월등히 높은 성취를 이룬 것은 확실하다. 베스트는 아니지만 베스트 주니어는 분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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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12. 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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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알프레드 랜싱 (뜨인돌출판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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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남극대륙 횡단을 시도했던 새클턴과 그의 탐험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야심만만하게 원정을 떠났던 그들이 빙하에 갖혀 고립되고, 배가 완파된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남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더욱 극적인 것은 탐험대 전원이 1년간의 서바이벌 기간 동안 한 사람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식량, 구조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절망, 거친 빙하와 바다와의 싸움 등 수십명에 달하는 탐험대원들이 죽을 위기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한 명이 동상으로 한 발을 잃어야 했지만 그 정도 희생만으로 전원 생환한 것은 기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졌다.


책은 재밌었다. 3시간 정도만에 완파했다. 평소 스피드보다는 떨어지는 것이지만 이동 중에 지하철에서 읽었다는 것과 일부러 속도를 좀 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달음에 읽어내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재밌게 볼만한 책이고, 여기저기서(신문 서평을 포함해서) 강한 추천과 지지를 한 터라 이하에서는 아쉬었던 점을 쓰겠다.


 가장 큰 것은 새클턴의 리더쉽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년동안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팀을 이끌고 생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해낸 새클턴의 리더쉽이 부각되지 못했다.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새클턴이 팀원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며, 어떻게 갈등을 풀어냈는지 보다 자세히 서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몇 가지 찾아볼 수 있기는하다. 새클턴은 팀원의 조직을 짤 때 개인간의 상성과 개인의 특성을 고려했다.

서바이벌 과정에서 갈등은 모두의 죽음을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해서 갈등을 사전에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 그는 낙천주의로 사람들을 격려했으며 이는 오랜 기간 지친 팀원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그러나 새클턴은 모든 면에서 탁월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의 상황 파악 능력과 대처 능력은 사실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했다.

몇몇 실수에 대해 팀원들은 불만을 가졌으며 이는 서바이벌 기간 동안 잠재적 갈등 요인이 되었다.

요컨대 새클턴은 리더로서 필요한 능력 중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나 위기관리 능력은 좀 떨어진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의 서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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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12. 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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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되는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진산 (부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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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에 썼던 글


요새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다니는 책이 있다. 바로 '마님되는 법'이다. 이미 2권을 선물로 뿌렸고, 추가로 2권을 더 뿌릴 생각으로 책까지 사뒀다. 거기다가 아직도 몇 명 더 뿌릴 계산을 하고 있다.


홍보카피를 보나(사랑방에 대감을 모신 삼월이가 될 것인가, 삼돌이를 거느리고 사는 마님이 될 것인가) , 책 제목을 보나 이 책은 여자들에게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마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해서 남편 뒷치닥거리만 하고 살지 않기 위해서 뭘해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책이다.


이렇게 보면 여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실용서라고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책은 무척이나 재밌다. 아주 쉽고 재밌는 말투로 쏙쏙 들어오게 책을 썼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 잡으면 쉽게 놓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공통적 반응이 재밌다는거다. 이만큼 후딱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책 흔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선물하고 추천하고 다니는 것은 그 유용성이나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책에 담겨있는 생각, 가치관 등이 아주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평소 성수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여자라면 기꺼이 한 평생 '삼돌이'로 살겠다는 당찬 말까지 하고 다닌다. (여자이기만 하면 충성을 다하는게 아니었냐고? 당신 너무 예리하다 )


대체 어떤 생각이기에 그러냐고? 책에 보면 좋은 삼돌이 재료 고르기라는 게 나온다. 재료가 좋아야 좋은 삼돌이가 나온다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좋은 재료란 외모, 돈 이런 게 아니다.


특히 화려한 재료에는 반드시 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반지 끼고 멍든 눈에 계란 문지르지 않으려면 그런 헛된 것에 눈돌리지 말고 사람의 본질을 살피라고 조언한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마음에 든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될 사람과 수많은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이 때 결혼식이나 결혼예물, 신혼살림 등을 싸우지 말라고 한다.


이 때 해야할 것은 미래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를 놓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장난스럽게 남편 길들이기 코스를 조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은 결혼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 눈에 어떻게 멋지게 보일 것인가가 아니라 둘이 얼마나 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걸 말로 하면 쉽지만 실제로 결혼을 앞두고 수많은 커플이 결국은 주위의 시선에 굴복하고 만다. 천편일률적인 웨딩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물을 놓고 양가가 신경전을 벌이고, 닭장에서 계란 뽑아내듯 결혼식을 치뤄내고, 남들 다 간다니까 동남아로 신혼여행가고 등등. 말로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다 하게 된다.


그만큼 남 시선 신경안쓰고 둘 생각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남 시선 따라가다보면 결국 겉치장에만 치중하게 된다. 잠시 동안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 위해 평생 고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겉치장은 단위시간당 자원 소비량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실속있는 결혼을 하고, 그에 걸맞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이 부부가 부러운거다.


평소 평등한 부부상을 제창하며,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꿈꾸면서도 '마님과 삼돌이'라는 불평등한 내용을 조장하는 책을 적극 추천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근본 가치관을 배우자는 뜻이다.

어떤 책에서 우리가 뽑아내야 할 것은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세부적인 것은 몰라도 된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사람이 말하길 '이건 이 저자의 사는 방식일 뿐이다.'라고 하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마님되는 법이라고 해서 그걸 다 따라할 필요는 없다. 따라한다고 다 마님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습득해야 할 것은 기본정신이다. 세상이 강요하는 모습을 거부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당당하게 따라가는 모습, 겉모습보다는 실리를 따라가는 삶 그걸 이 책에서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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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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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만담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좌백 (파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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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진산 부부의 생활이야기. 마님되는 법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던 그들 부부 이야기가 짤막한 글을 통해 코믹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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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11. 2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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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이주헌 (학고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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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좋은 미술서를 갖지 못했었다. 미술서는 체험을 통해 가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원본을 보고 쓰는 글과 화첩을 보고 쓰는 글은 비교할 수 없다. 아무리 미술 관련 책을 읽어도 원체험 없는 글은 막연할 뿐이다. 현장에 가본 사람과 지도를 본 사람의 운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서 본 사람이 적으니 좋은 미술서를 갖기 어려웠다. 본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좋은 글솜씨를 가진 것은 아닌 바에야. 좋은 작가가 안 나오는데 좋은 독자는 나오겠나. 미술서에 대한 욕구를 가진 독자층도 얇았다.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미술서를 갖기까지는 두 가지, 용기와 전략이 필요했다.


 이 책의 저자, 이주헌 님은 그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이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라는 멋진 책은 그 결과물이다.


먼저 용기. 이주헌 님은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왔다. 미술글로 먹고 살고 싶었기 때문.

보장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미술전문기자로 몇 년 근무하고, 미술책도 내서 비빌 구석은 있었지만 그걸로 밥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독자층이 가장 얇은 미술분야는 하물며.

구본형 님은 책도 한 두 권 내고 치밀하게 준비했지, 애 둘 딸린 가장이 사표를 던지고 뛰쳐나오게 한 건 용기. 그 길로 학고재를 찾아가 미술서를 하나 쓰려하니 선금을 내놓으라고 한 것도 용기다.


용기와 만용은 같다. 꿈을 꾼다는 점에서는. 용기와 만용은 다르다. 전략이 있다는 점에서는. 어디로 보나 직장인의 일탈로 끝날을 길이 보석같은 미술서의 길이 된 것은 그에게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딱딱한 미술서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략을 짰다. 가족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하고, 유럽의 미술관을 하나하나 훑어가면서 부담없이 미술에 빠질 수 있게 한 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책으로만 접하던 미술작품을 실제로 보려는 욕구가 있음을 간파하고 여행갈 때 들고 갈만한 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컨셉북을 혼자서 기획하고 내놓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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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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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유럽 미술관에 가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허은경 (삼우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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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과 비슷한 컨셉의 책. 기자 출신인 이주헌 님에 비해 글맛은 떨어지는 편.
정보 면에서는 좀 더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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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장르문학2009. 11. 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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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의자 탐정'이라는 유형이 있다. 사건현장에 가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내용만 가지고 추리를 하는 탐정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이 사람좋은 할머니는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노파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삶과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버린다.

 미스 마플의 대표작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 안락의자 탐정으로서의 미스 마플의 진가가 잘 드러난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자신이 겪은 신기한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모임이 있다. 이 얘기를 듣고 자기가 사는 시골마을 세인트 메어리 미드에서 있었던 일에 견주어 "세상만사 다 똑같은거야"라며 해결하는 미스 마플의 모습은 안락의자 탐정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화요일 클럽의 살인(애거서크리스티추리문학베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애거서 크리스티 (해문출판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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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컬렉터의 링컨 라임도 안락의자 탐정이다.

본 컬렉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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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목 윗부분과 왼손 약지만 움직일 수 있어 안락의자 탐정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 Jr.) / 외국배우
출생 1954년 12월 28일
신체
팬카페 ★덴젤 워싱턴★을 사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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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본 컬렉터'에서는 덴젤 워싱턴이 링컨 라임을 연기했는데, 소설에서 링컨 라임은 백인이다


 그는 한때 오만한 천재 법의학자였다. 사건 해결에만 관심있는 독불장군. Dr. House에 비견될 까다로운 이 남자는 사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죽음을 원하고 자살을 꿈꾼다.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자살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그에게 오랜 동료가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해결을 부탁하고, 조언만 조금 해주고 어서 죽으려던(?) 그는 조금씩 조금씩 잃어버렸던 수사열정을 찾게 된다.

 이렇게 첫 모습을 드러내는 안락의자 탐정 링컨 라임은 엣 동료와 새로이 그의 파트너가 되어 눈과 발이 되어주는 젊은 여경찰 아멜라이 색스가 가져오는 정보와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CSI를 떠올리게 하는 법의학의 향연과 독특과 캐릭터의 매력이 생생한 본 콜렉터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1편이라는 점에서 더 기분좋은 깔끔한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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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장르문학2009. 10. 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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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중사영(杯中蛇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나라 때의 일이다. 악광이라는 사람에게는 벗이 한 명 있었다. 자주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언제부터인지 오지 않았다. 악광이 기이하게 여겨 친구를 찾아갔더니 얼굴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친구가 대답했다.

 "전에 술을 마실 때 내 잔 속에 뱀이 보였다네. 자네에게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마신 후에 몸이 안 좋아졌네"

이상하여 조사해보니, 그 때 술자리에는 뱀이 그려진 활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뱀그림이 친구의 술잔에 비쳤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주니 친구의 병이 나았다.

 배중사영이란 아무 것도 아닌데 혼자서 근심 걱정을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고사성어가 잘 어울리는 소설이 있다. 심플 플랜이다.

 
심플 플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스콧 스미스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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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스미스의 데뷔작인 '심플 플랜'에는 스티븐 킹이 적극 추천한다는 홍보문구가 표지에 써있다. 스티븐 킹, 좋은 작가지만 좋은 추천인은 아닌 것이, 그의 추천이라는 말에 속아서 실망한 소설이 어디 한 두 개 였냐는 말이지.

 그렇지만 여기저기에서 좋다는 리뷰가 보이길래 한 번 읽어보았다. 과연 좋았다.

 심플플랜의 설정은 단순하다. 여기 별 볼 일 없는 소시민이 있다. 우연히 비행기 잔해에서 4백4십만달러를 발견한다. 혼자 발견했으면 좋았겠지만 사고뭉치 형과 더 사고뭉치인 형의 친구와 같이 발견했다. 이 철없는 두 사람은 바로 돈을 쓰자고 아우성이지만, 바로 쓰면 잡히는 법. 6개월만 숨겨뒀다가 돈을 나누기로 한다. 단순한 계획. 단순해서 실패할 리 없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돈은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불신을 키운다. 원래도 믿지 못했던 형. 가까이하기조차 싫은 형의 친구. 그는 믿지 못할 두 사람 사이에서 돈을 가진 기쁨과 돈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조바심에 심플 플랜을 조금 수정하기로 한다. 

 아주 조금. 보다 완벽해지기 위한 수정이었지만, 이미 뱀을 봐버린 주인공은 파국으로 빠져든다. 

 실제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사람은 형과 그 친구 뿐이다. 그 위협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다독일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지만 술잔에서 뱀을 봐버린 주인공은 자신을 돕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고, 피를 나눈 형조차 믿지 못하고, 작은 사건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사건을 저지르는 저주의 뫼비우스 띠를 그려나간다.

 
 심플 플랜에서 소름끼치는 묘사나 잔혹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죽음은 나오지만 그 묘사는 심플하다. 무서운 것은 그 죽음이 발생하기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 묘사되는 주인공의 심리다. 단순한 계획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여 주인공을 옳아맬 때 조금씩 미쳐가는, 조금씩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정말 저렇게 될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절망과 공포가 마음속에 파고든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 무너졌으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저자의 필력에 내 눈에도 뱀이 씌어버린다.

 스멀스멀 스릴러 - 심플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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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책들2009. 9. 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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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M의 성생활
카테고리 가정/생활
지은이 카트린 밀레 (열린책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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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성생활 - 10점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까뜨린 M의 성생활, 이 책의 표지는 빨갛다(개정판 표지는 달라졌다). 빨간 책이다. 도색잡지를 일컬을 때 '빨간 책'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책은 그것을 의도한 양 빨간 표지를 쓰고 있다. 원서의 표지는 여인의 누드로 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그런 표지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테고, 책의 성격은 드러내야 하겠고 해서 이런 표지를 취한 게 아닌가 싶다.

 제목과 표지에서 보이듯이 이 책은 '야한 책'이다. 잡다한 책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성수가 그 간의 독서경험에 비추어서 자신있게 말하건대 출판물 중에서 표현의 강도와 내용의 적나라함 만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하다. 표지에 보면 '19세 미만 구독불가' 라고 되어있는데 그럴만하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나 부끄러움, 민망함 등을 느낄 것이다. 물론 출판물로서의 한계가 있으니 비출판물 - 흔히 말하는 야설 - 보다 약할 수밖에 없지만 출판물로서는 한계의 끝까지 내달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도색소설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지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카트린 M이라는 프랑스 여자가 자신의 성경험을 쓴 책이다.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이게 중요하다. 솔직하게. 책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일찍이 어떤 여자도 자기의 성생활을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한 여자가 자기의 쾌락이 형성되고 펼쳐지는 현장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등으로 그 솔직함과 적나람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니 얼마나 성생활을 많이 했기에 책으로 쓸 정도냐고? 많이도 했다. 일대일 관계는 별로 없고, 대부분 다대 일의 관계다. 보고 있음 정말 이 여자, '생활'하느라 힘들었겠다.

다대 일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성생활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변태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 안 들었다. 들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적어도 이 책은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다. 6개월 간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점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고 - 물론 호기심에서 사본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만- 각 언론과 진보적 지식인 층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 솔직함 때문에 여성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성적 진보주의라는 면에서 크게 평가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섹스에 있어 여성도 주체가 될 수 있고 능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페미니즘과 여성해방 그리고 남녀 평등 등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성에 있어서 전통적인 남성 우월주의는 여성은 섹스에 있어 수동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전통적 남성 우월주의를 깨버린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평가는 나름 일리있는 것이며,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맘에 안 드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우리 언론과 우리 사회의 반응이다. 서갑숙씨의 '나도 가끔은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라는 책이 외설논란에 휘말리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 책 때문에 저자 서갑숙씨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됐다. 출연하던 드라마에서 쫓겨나고 거의 '미친 년' 취급을 받았다. 어디 여자가 자기의 성경험을 밖에서 떠들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책의 각 부분을 문제삼는 기사가 언론에 실리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두 책을 모두 읽어봤다. '카트린 M'에 비하면 '포르노그라피'는 애들 동화다. 표현의 강도와 양 자가 경험한 섹스의 형태 등 어느 것을 봐도 카트린 M이 더 심하다. 포르노그라피 에서 문제됐던 2 대 1 섹스나 36시간 섹스라는 것 사실 별 거 아니었다. 

 카트린 M에는 한 페이지에만도 파트너가 몇 명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아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많이도 한다.

그런데 카트린 M에 대해서는 우리 언론에서도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체로 외국 언론의 코멘트와 비슷하게 솔직한 미덕을 보이는 책이라고 한다. 우리 정서와 좀 안 맞는다는 얘기도 있지만 대체로 봐서 나쁠 것은 없다 정도의 반응이다.

이처럼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은 왜일까?

 일단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대주의를 들 수 있다. 한마디로 외국 사람이 한 것은 일단 뭔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국에서 칭찬했으니 차마 뭐라 말 못하는 것이다. 객관적 잣대로 본다면 카트린 M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쳐야한다. 그럼에도 알아서 기는거다. 갱뱅을 벌여 주목을 받은 중국계 미국인 에나벨 청에 대한 우리 언론의 태도도 역시 그러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도 나오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난리였다. 일종의 페미니스트 전사로 취급했다. 우리나라 여성이 일부러 300명이 넘는 남자와 잇달아 성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해봐라. 나라 뒤집어졌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자리잡고 있다. 서갑숙씨가 여자였기 때문에 더 난리친 것이다. '어디 여자가 감히' '여자는 자고로 조신해야지' 이런거다. 이런 태도는 'O양 사건'에 있어서 'O양'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을 하면서 상대인 'H'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같이 했는데 여자만 매장당했다.

 참고로 H의 비슷한 수기집도 출판됐는데 이 책 역시 표현강도는 '포르노그라피'보다 더 심함에도 별로 문제되지 않았었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 대해서 더 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몰아붙인다. 성적 엄숙주의도 인정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엄숙주의는 사회폭력의 하나일 뿐이다.

카트린 M을 읽으면서 든 씁쓸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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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
각종책들2009. 9. 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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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한다. 하루키라고 하면 반가워하며 '상실의 시대'를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데요'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하루키가 수필도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키는 소설도 씁니다 라고 답한다.

그러다보니 상실의 시대도 안 읽었고,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인 '1Q84'도 안 샀다. 하루키의 수필이 새로 나오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 읽고, 헌책방에서 하루키의 옛 수필들을 사 모으는 나지만 소설은 집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하루키는 수필가고, '상실의 시대'를 쓸 때의 이야기인 '먼 북소리'는 좋아하지만 정작 그 산물인 '상실의 시대'는 읽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책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쯤 확인은 꼭 해보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는데 체크하지 않는 이상한 모습인거다.


먼 북소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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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에게 하루키는 수필가라는 아집이고, 순정이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김연수가 그렇다. 김연수는 잘 나가는 소설가고, 지금도 잘 나가지만 10년 쯤 뒤에는 떠르르르 하고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한 소설가다. 그렇지만 김연수도 소설보다 수필을 먼저 읽게 된 까닭으로 내게 하루키 취급을 받고 있다. 김연수는 수필이지. 아무렴.

게다가 그 첫 수필이 워낙 강렬했어야 말이지. 하루키는 처음 읽은 수필은 그냥 담백하다 싶었는데 찾아서 읽다 읽다 보니 이게 은근히 파고들었다면, 김연수는 처음부터 띵하니 충격을 받아서 어디서 이런 수필가가 숨었다 나타났냐고 탄성을 질렀던거다.

그건 처음 읽었을 때의 상황도 연관이 있을 터인데, 하루키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하던 참에 반친구가 가져온 책을 빼앗다싶이 빌려본 터이고, 김연수는 첫번째 소설에 술잔을 앞에 놓고 읽은 터였다. 그 분위기에 김연수라니. 참으로 어울렸다.

그 첫번째 수필이 '청춘의 문장들'이다. 김연수가 젊을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히 천천히, 문장과 엮어서 풀어낸 그 책은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똑 떨어지는 충격과 아련함을 던져줬다.


청춘의 문장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연수 (마음산책,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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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때가 아니면 쓰여지지 않을 비루하고 지리한 일상이 청춘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잠시나마 빛날 수 있다는 것. 어느 청춘이든 그 때는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것. 청춘에 읽었기에 그것이 청춘임을 알 수 있다는 것.

고집스레 잘 나간다는 김연수의 소설을 거부하면서 이 책 '청춘의 문장들'만 계속 파게 하는 그 순정은, 청춘으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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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mworld